통일부 30년 외길…남북교류 협력·통일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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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접촉·왕래 제도화·정착 일조…남북회담 18차례 진행
“콘텐츠 개발·교사 전문성 키워야”…통일교육 중요성 강조
제주연구원서 평화의 섬 자문…화해·상생 문화 동반 기대
홍재형 전 통일교육원장(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지난 2007년 4월 18일 제13차 남북경제협력 추진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 평양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재형 전 통일교육원장(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지난 2007년 4월 18일 제13차 남북경제협력 추진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 평양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재형 전 통일부 통일교육원장(65)은 통일부에서만 30년 가까이 한길 인생을 살아온 남북교류 협력과 통일 전문가이다.

통일부에서 인도지원국장과 사회문화교류국장, 남북회담 상근대표, 남북회담 본부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통일부 남북대화 비상임자문위원, 평화문제연구소 이사, 제주특별자치도 남북교류협력위원 등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과 공직의 꿈

홍 전 원장은 1955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구몰동에서 6형제 중 2남으로 태어났다.

교직자로 봉직했던 선친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식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어도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오현중학교와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장래 진로는 일찌감치 공직을 선택하기로 뜻을 두고 있었다. 이에 부산대학교도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 공직자로서의 소양에 도움이 될까 싶어 비평 계통의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기도 하였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 이듬해 공직에 입문하게 됐다.

통일부에 몸담다

1983년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하면서 공직의 터전은 통일부가 되었다.

홍 전 원장은 통일부에서 하는 일은 하나하나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떠올리는 거룩한일이라 늘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고, 전략적 마인드도 필요했다고 떠올렸다.

특히 남북 교류 현장에서나 남북회담장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임무 수행이 이루어지고 남북관계 개선에 조그만 벽돌 한 장을 쌓아 올리게 될 때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어렵게 쌓아 놓은 남북관계가 어느 날 쉽게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해 지속가능한 남북관계가 그렇게 어렵다는 점을 실감하기도 했다.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당시 자주 들렀던 판문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홍재형 전 통일교육원장.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당시 자주 들렀던 판문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홍재형 전 통일교육원장.

남북 교류 협력 업무 성과

1990년대 중반 남북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 과장 당시 초창기 대북 접촉·왕래 절차를 제도화하고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특히 1994·미 제네바 합의를 계기로 이루어진 기업인 방북 허용 조치로 민간 차원의 남북 왕래가 시작됐는데, 이때 마련된 실무적 절차와 처리 체계는 인적 교류 절차의 기초가 되고 있다.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 기억도 전했다. 남북 이산가족상봉은 2000년 이후 서울-평양 교환 방문 방식으로 세 차례 진행되다 20024차 행사부터는 금강산 한 곳에서 쌍방 상봉단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당시 대규모 인원이 금강산 현지로 이동하는 문제, 선박 이동과 숙박, 행사 진행 방식, 연락 문제 등으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결국은 부서 전 직원과 함께 몇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첫 금강산 상봉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어 여섯 차례의 상봉 행사를 주관했고, 이때 마련된 행사모델에 따라 지금까지 총 20여 차례 진행됐다.

2000년을 전후해 민간단체들이 긴급구호, 농업복구, 보건의료, 취약계층 구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추진하자 이에 대한 행·재정적 가이드라인을 만들면서 지원 업무도 담당했다.

제주에서도 감귤 보내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감귤 물량은 자체적으로 확보가 가능했지만 선박 수송비 등 막대한 재원 조달이 문제였다. 마침 통일부에서 마련 중인 민간단체 지원 근거에 따라 국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 국회 등과 수차례 협의 절차를 거쳤다. 기금 지원은 2001년부터 7년간 110억원이 이뤄졌다.

기록적인 남북회담

200711월 남북회담본부장을 맡은 후 한달 새 회담이 18차례나 있었다.

부총리급과 장관급, 차관급 분과회의, 실무급 접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쇄적으로 이뤄져 기록적이었다. 그 후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아 대화가 단절되자 안타까움을 전했다.

홍 전 원장은 남북관계는 분위기를 많이 타는 걸 보아왔다원칙과 기준을 옳게 세우고 대화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관계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교육의 중요성

20095월 통일교육원장으로 취임했다. 미래지향적인 통일의식 확산, 북한 바로 알기, 정책 소통 기여,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 강화를 중점에 두었다.

특히 청소년층의 통일 무관심 경향에 주목하고 다층적으로 접근했다.

우선 교육원내 업무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학교통일교육 전담팀을 구성해 인력과 예산을 대폭 보강했다. 이 전담팀은 훗날 정식 과 편제로 승격됐다.

통일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재와 IT기술을 활용한 학교 IPTV 콘텐츠를 개발, 전국 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콘텐츠로 교과보조용·재량활동용·특별프로그램으로 나누어 VOD, 학습플러시, 게임 등의 형태로 제작됐다.

통일교육원은 지역사회 통일교육네트워크 구축 차원에서 전국 시·도 마다 통일교육위원을 위촉하고 위촉 위원들이 해당 지역의 지역통일교육센터을 통해 사회 및 학교 통일교육 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홍 전 원장은 이와 관련 제주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이라 평가되고 있고, 전국 네트워크 합동 컨퍼런스가 제주지역에서 자주 개최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통일 교육에 대해서는 청소년 통일교육은 기본적으로 학교의 제도권 교육에서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내실 있게 이루어지는 체계가 중요하다통일 관련 단원이 시수 부족으로 제대로 이수되지 못하는가 하면, 입시교육에 밀려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선 교육 현장에서 통일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관련 교과 내용의 정립, 맞춤형 콘텐츠의 개발, 담당 교사의 전문성 등 3요소가 갖추어지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교육 주안점에 대해서는 역사적 안목과 국제적 시야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고 통일에 대한 진취적인 비전을 심어주는데 두어야 할 것이라며 “21세기의 시대적 목표인 평화와 통일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통일 여정에 함께하는 삶

공직 생활을 마친 후에도 남북 교류와 통일의 길에 함께하고 있다.

2013년부터 4년간 제주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평화의 섬관련 자문과 통일교육 관련 네트워크를 통한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민주평통 자문위원 활동과 함께 서울 소재 통일 유관 연구단체에서 포럼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고향 제주에 대한 제언

홍 전 원장은 평화의 섬과 관련 제주공동체 내에서의 화해와 상생 문화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3 문제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서도 각계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평화의 섬을 만드는 일과 연결시켜서 해결의 길을 찾았으면 한다제주형 화해모델이 만들어진다면 남북의 평화 번영과 세계 갈등 해결의 한 전형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당국 간 대화 재개에 대비해 제주 커뮤니티가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추상적 담론보다는 구체적이고 적실성 있는 프로그램 제시 시류에 편승한 캠페인성의 대북 접근을 지양하고 손에 잡히는 아이템 발굴 필요 중앙정부의 대북정책 어젠다와의 연계 대북 교류 민관협력 등 도민사회의 공감대 형성 일관된 정책 기조와 사업 방향을 유지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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