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고 지는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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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포근한 방에 앉으니 바깥도 따뜻하게 느껴져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웬걸, 금세 귓불이 시리고 콧등이 찡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의 다채로운 색깔들이 주위를 곱게 물들였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냉기가 위세를 떨친다.

뜨거운 차 한 잔 마시려고 포트에 물을 앉혔다. 뽀얀 수증기가 뿜어 나오면서 시린 내 마음에 온기부터 전해준다. 은은하게 퍼지는 차향은 후각을 통해 뇌까지 전달된다. 순간적으로 잔잔한 행복감이 내 몸과 마음을 감싸 안는다.

라디오를 켜자 ‘카페 문화’ 이야기가 나온다. 귀가 쫑긋해진다. 정치적인 날선 공방 때문에 매스컴의 논쟁거리는 흥미가 없는데 카페 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섬뜩한 주장도 들린다.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커피 맛을 즐기기도 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정보를 공유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카페는 이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우리의 생활문화다. 낯선 것이 때로는 익숙함으로, 놀라운 현상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곁에 자리를 트는 게 생활문화다. 카페라는 새로운 여가 공간이 우리 곁에 자리를 틀면서 삶의 여유를 즐기는 양상도 다양해졌다. 식사 한 끼와 맞먹는 커피를 카페에서는 거리낌 없이 사서 마신다. 짙은 커피 향에 귓가를 스치는 음악과 안락한 의자에다 독특한 인테리어까지. 카페 안은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고객 편에서 보면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이다. 여럿이 모여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혼자 오래도록 머물 수도 있다.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야 하는 패스트푸드점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학생은 물론이고 연인, 직장인, 뜨내기들도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교류의장이라고나 할까?

그런 공간이 코로나로 인해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혼자서 조용히 사색을 즐기거나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집에서 할 수 없는 업무를 처리하거나 쉴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도 낭패일 수밖에 없다. 어떤 장애 때문에 반짝 떴다 사라지는 시대의 문화들처럼 카페 문화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서운한 생각이 든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카페 유리창 너머로 의자들이 벌을 서듯 테이블에 거꾸로 놓여있는 모습을 본다. 누군가에겐 참으로 필요한 공간인데 이렇게 외로운 처지로 몰리다니. 코로나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일상의 익숙한 삶들이 코로나로 인해 많이 지워진다. 그 대신 새로운 삶의 양식이 나타난다. 지난 삶은 뒷전으로 밀리고 변화의 파고에 휩쓸리는 수많은 일거리들도 함께 사라진다. 이제나 저제나 코로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애가 타지만 과거의 삶의 패턴이 오롯이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탁자에 거꾸로 눕혀진 빈 의자들이 다시 제자리로 내려가 사람들의 따스한 체온을 공유할 날은 언제일는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도 서로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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