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음악처럼, 포구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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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월평포구(下)
계절마다 섬은 마법 같은 시간 풀어놓아
제주를 담은 시 한 편, 음악 한 곡 바다 위에 울려퍼져
차분하게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네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오래도록 사랑하고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 다시 포구를 찾을 것만 같습니다.
차분하게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네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오래도록 사랑하고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 다시 포구를 찾을 것만 같습니다.

이 섬의 신비로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계절마다 섬은 마법 같은 시간을 풀어놓습니다. 봄이면 노란 유채 물결이 섬을 흔들고 오름 위를 물결치는 억새는 심장을 멎게 합니다. 할퀴고 간다는 표현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게 또 제주의 겨울바람이고요. 자연의 섭리란 어디든 다 비슷하겠지만 섬에서 보내는 사계절에는 원초적인 눈부심이 살아있습니다.

 

섬에서 나고 자라도 섬은 늘 그리운 존재입니다. 가까이 있어도 자꾸만 걸음을 불러내니까요. 그렇게 떠나온 곳에는 눈 시린 쪽빛 바다와 검은 돌담, 한라산에서 곶자왈을 지나 해안에 이르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참 고마운 존재 같습니다. 무작정 길을 떠나도 언제나 늘 거기에 있으니까요.

 

섬이 더욱 특별해진 순간은 또 있습니다. 흐드러진 꽃밭 안에서 어느 시인의 시집을 건네받은 날. 그녀의 시는 눈부셨고 아련했고 쓸쓸했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섬에 뿌리내린 돌 하나, 풀 한 포기, 구름 한 점을 예술로 피워낸 였죠. 시인의 눈이 그토록 부러웠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제주의 자연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 준 시인들. 고향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 한기팔 선생님도 그 가운데 한 분이시죠. 우리에겐 보목리의 시인으로 더 유명한 분입니다. 정민자님의 목소리로 옮겨낸 선창이 포구 위를 흐릅니다.

 

외등(外燈) 하나 외롭게 서 있는 선창이 있다.

이따금 지나는 윤선소리에도

 

부우옇게 울려오는 선창이 있다.

!이처럼 허전하게 돌아서야 한다면돌아서서 이처럼 억울한 것이면

묶인 채로 뒤척이는 바다 옆에서

온 밤을 불을 켜는 선창이 있다.

 

- 한기팔선창전문

 

섬은 홀로 떠 있기에 필연적으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고 삽니다. 끝없는 바다 앞에서 이유 없이 고독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렇게 너무 외로우니까 등대 하나 세우고 불을 밝히는 것이겠죠.

 

이관홍 오보이스트가 알토색소폰으로 ‘광화문 연가’를 연주합니다. 추억을 부르는 노래가 바다 위에 울려퍼집니다.
이관홍 오보이스트가 알토색소폰으로 ‘광화문 연가’를 연주합니다. 추억을 부르는 노래가 바다 위에 울려퍼집니다.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했나 봅니다. 그 심경은 외롭게 서 있는 선창이 되었다가 뒤척이는 바다가 되었다가 온 밤을 불을 켜야 했을 정도니까요. 아무래도 이 시의 깊이는 포구 앞을 수없이 서성이던 시인의 발걸음 수만큼 아름답게 표현된 것 같습니다.

 

국악인 전병규·현희순님이 ‘취타’를 들고 나왔습니다. 소금과 장구로 국악의 깊은 멋을 선사합니다.
국악인 전병규·현희순님이 ‘취타’를 들고 나왔습니다. 소금과 장구로 국악의 깊은 멋을 선사합니다.

바람난장은 시 한 편 음악 한 곡 허투루 고르는 법이 없습니다. 이관홍님은 연주곡으로 광화문 연가(알토색소폰)’, 전병규님과 현희순님은 취타(소금·장구)’를 들고 나왔습니다. 저마다 월평포구에 어린 이해와 감정을 독백하듯 풀어냅니다. 볼 때마다 늘 마음을 흔드는 무대. 음악가에게 악기란 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요.

 

바람이 붑니다. 차고 시린 칼바람이 포구를 삼킬 듯 불어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섬에서 바람을 맞지 않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글쎄요, 다른 섬은 그럴 수 있을지언정 제주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삶에도 예술에도 바람의 무늬가 새겨진 곳이 이곳, 제주라는 섬이니까요.

 

이정순님의 오카리나 연주자의 ‘바람’이 가슴을 후비듯 들어옵니다. 길고 가늘지만 강렬한 여운을 끝까지 지켜내며 가슴 한 구석에 있는 시련과 아픔을 다 토해냅니다.
이정순님의 오카리나 연주자의 ‘바람’이 가슴을 후비듯 들어옵니다. 길고 가늘지만 강렬한 여운을 끝까지 지켜내며 가슴 한 구석에 있는 시련과 아픔을 다 토해냅니다.

이정순님의 오카리나 연주 바람이 가슴을 후비듯 들어옵니다. 길고 가늘지만 강렬한 여운을 끝까지 지켜내며 가슴 한 구석에 있는 시련과 아픔을 다 토해냅니다.

 

차분하게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네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오래도록 사랑하고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 다시 포구를 찾을 것만 같습니다. 섬을 사랑하는 그녀의 시 한 편, 가슴 속에 품고서...

 

※올해 마지막 바람난장은 12일 오후 5시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문화공간 항파두리에서 열립니다.

 

사회- 정민자

그림- 홍진숙

사진- 허영숙

영상- 김성수

시낭송- 김정희

음악- 이관홍 전병규 현희순 이정순 윤경희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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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2020-12-17 06:00:34
바람난장 열혈구독자 입니다
천연적인 장소에서 좋은 글과 그림, 춤, 음악, 등 종합예술을 보여주신 분들!
지면으로라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혹시 *김은정*씨와 연락 가능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