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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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눈이 많이 내려서일까. 아잇적 겨울엔 눈만 보면 푸근하고 넉넉했다. 땅을 덮은 하얀 눈이 온통 이팝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겨울 해는 노루 꼬리처럼 짧다고 점심을 찐 감저(찐 고구마) 두어 개로 때워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 눈 덮인 마당으로 무리 지어 내리던 참새 떼를 바라보며 가슴 설렜다. 

정강이가 푹푹 빠지던 긴 골목에 쌓인 눈을 헤쳐 고샅으로 나가는 게 힘겨웠지만 야릇한 쾌감에 걸음걸음 들떴다. 눈 온 날 등굣길은 그렇게 무엇으로 가슴 가득 채워지곤 했다. 하얗게 순일한 눈에서 느끼는 막연한 감동이었을 것이다. 눈 내리는 날 밤이 내리면 차가운 구들장에 이불 하나에 발 막아 눕던 세 남매, 나뭇가지에 걸어도 잔다는 아잇적 꿀잠에 빠졌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많이 가진 듯 마음 풍만했던 눈 내리는 밤이 지금도 몇 쪽 동화 속 얘기 한 도막으로 되살아난다.

근년 들어 몇 해인가 눈 없는 겨울을 지낸다. 지구 온난화 탓이라 한다. 멋대로 살아온 죗값을 이제 사람이 치러야 한다니 어디에 대고 통사정하랴. 싸락눈이나 소낙눈 한 차례 지나지 않는 겨울처럼 춥고 결핍한 계절은 없다. 백면서생이 겨울에 눈마저 내리지 않으면 삶이 헐거워진다. 겨울의 서정시, 눈이 없는 정신의 허기를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나.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후회(後悔)가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냐//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디찬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사 쌓여/ 내 슬픈 그 위에 고히 서리다.

김광균의 시 〈설야〉의 후반부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나직이 읊조리고 싶은 구절이다. 눈 내리는 밤의 고적한 풍경을 감각적으로 빗대 서정적으로 그렸다. 이미지가 내면화해, 도시 감각이 서정적 요소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런 시 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면, 빈부니, 체면 따위 뭐가 대수겠는가.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춰 버린 시간에 얹어 산다. 이 울적한 겨울에 눈이라도 내렸으면, 이왕 내릴 거면 펑펑 쏟아져 내렸으면 좋겠다. 질병으로 해서 쌓일 대로 쌓인 오랜 피로까지 다 덮어 버리면 좋겠다.

눈은 대기 중의 수중기가 찬 기류를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눈은 이런 삭막한 단문으로 정의되는 게 아니다. 눈은 서정시요 낭만이다. 마당의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다 눈 위를 뒹굴며 좋아한다.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고 백발 노옹의 가슴에 다시 청춘을 불러 되살아나게 하는 불씨다.

우리말엔 유독 눈을 가리키는 말이 많다. 가랑눈, 가루눈, 길눈, 도둑눈, 마른눈, 만년눈, 밤눈, 복눈, 봄눈, 소나기눈, 솜눈, 숫눈, 싸라기눈, 자국눈, 진눈, 진눈깨비, 찬눈, 첫눈, 함박눈…. 많은 눈의 파생어를 앞에 놓고 보면 신기하다. 겨울 한철 눈이 우리나라에만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다양한 눈을 가리키는 어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눈이 내린다는 얘기다. 한국인들이 많은 눈을 달리, 다른 눈으로 보는 감성의 눈을 가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해 다르고 ‘아’ 해 다른 감정 표현의 오묘한 차이, 이것은 곧 뉘앙스에서 오는 차별화한 눈들이다.

제주는 눈 구경 힘든 섬이 돼간다. 다양한 눈은 바라지 않는다. 올겨울엔 코로나19 시름 위로 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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