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을 늘려야 한다
요양원을 늘려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임시찬 수필가

큰길가나 반듯한 진입로가 있는 병·의원과 달리 요양원은 꼬불꼬불한 길목을 돌고 돌아서 한적한 곳에 자리했다. 도착한 주차장에는 이미 수 십여 대 넘는 차량으로 그득하고 소설 지난 낙엽수 마지막 잎새가 삭풍에 날리며 제 갈 길로 떠나간다.

소망요양원이다. 입소할 때 떠나온 집으로 되돌아 갈 수 없고 오직 천국으로 이사를 하는 곳이다. 고모님을 자주 찾아와서 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오늘은 무슨 소망을 기원하고 계실까. 지난번 작은고모님이 왔을 때는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냐. 갈 때 같이 가자고 해서 서로 울었다는 데···.

4·3사건에 남편을 여의고 청춘에 홀몸으로 오일장에서 의류를 팔아 자녀를 키우셨다. 바삐 살면서도 마을 부인회 임원으로 봉사도 하면서 미덕을 쌓았지만, 하늘같이 믿었던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하고 먼저 떠나갔다. 고래 같은 몸부림과 울음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딸에게 의지하고 살아온 세월도 순탄치는 못했다. 망백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고독 속에 갇혀 지내는 날이 많았다. 자주 찾아뵈는 게 도리인 줄 알지만, 사람만 보면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매번 장시간 풀어놓고 놓아주질 않았다. 이야기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어 모처럼 만나면 반가워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굼뜬 어머니 걱정을 하면서 짬을 내어 돌보던 딸이 몹쓸 병에 걸린 후 요양원에 눈물로 입소를 시켜놓고 이승을 떠나갔다. 사실 이야기를 차마 할 수가 없어 지금도 모르고 계신다. 가끔 왜 안 오냐 물으면 병구완하려고 미국에 갔다고 거짓을 고해야 하는 사람의 가슴은 서늘하기만 하다.

코로나19로 너무나 험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면회도 자유롭지 못해서 예약을 하고 투명한 유리 너머 마스크까지 낀 얼굴로 마주 앉았다. 불편하지 않은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글자를 크게 써서 내보였더니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답하신다.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점심시간에 맞춰 휠체어를 돌려야 하는 시간이다. “지내는 데 아무 불편 없으니 바쁜데 자주 찾아오지 마라.” 돌아서는 발길이 천근만근이다.

지금도 시설에 부모를 맡기는 걸 불효로 여기는 사람이 꽤 있다. 장병으로 효자보다는 형제간에 불목한 경우가 더 많다. 늙은 부모가 짐이 되고 효마저 귀찮게 생각하는 시대에 요양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고령화 시대다. 늘어만 가는 노인을 각 가정의 급박한 생활환경 속에서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자식은 도리를 못 해서 울고 부모는 이를 지켜보면서 운다면 지옥이 따로 있다 할 것인가. 노인의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신체 기능과 정신 증상은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쉽게 관리할 수가 없다.

요양원 입소기준이 5등급으로 나뉘고 그중 1~2등급은 요양보호사가 있는 요양원에 입소하여 혜택을 받지만, 3등급 이하는 어렵다.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젊은 날 국가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던 노인들이다. 노인복지의 정점인 요양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대하는 일이야말로 전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