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해체공사 성공…연 매출 100억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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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자본금 3억원·직원 3명 창업…20년간 안정적 운영
주요 기업 협력업체 등록…소록도 봉사 등 활동도 적극적
“어떤 분야에서 3년만 참고 노력한다면 성공, 목표 이룬다”
지난 6월 11일 서울시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용산구상공회 임시총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박기찬 대표이사.

박기찬 현암건설산업대표이사는 1959년 추자도에서 3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제주상업고등학교(현 제주중앙고)를 거쳐 1986년 경기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성도건설에 입사해 근무하다 1999년 지금의 회사를 창립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현장에 도립하기 위한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업에 매진, 2004년 모교에서 관련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장 배경

추자도 출신인 박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육영수 여사의 초청으로 친구들과 함께 군함을 타고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았다.

당시 인천항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박 대표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내뿜는 고층 건물을 비롯해 자동차 등을 처음 접했다.

난생처음 자동차를 구경하고 삼일빌딩, 남산타워 등을 보면서 서울 생활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친구들로부터 축구공을 차면 바다에 빠지는 곳에서 왔다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청운의 꿈을 품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서 성공하겠다는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업에 매진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포항에서 시멘트 생산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박 대표는 1990년 당시 우리나라 건물 해체 분야에서 최고 업체인 성도건설에 입사했다.

박 대표에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 회의를 품고 자신만의 회사를 운영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회사 설립

박 대표는 자본금 3억원, 직원 3명으로 19999월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창업 첫해 매출액 1억원을 찍은 현암건설산업은 이듬해 10억원, 3년차 20억원, 4년차 50억원 등 승승장구했다.

현재 리모델링 해체공사, 플랜트 해체공사, 토목구조물 해체공사, 고층 아파트 해체공사를 하면서 연 매출 100억원을 올리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배관 세척 장치 및 배관 세척 방법, 워터젯을 이용한 배관 세척 장치, 건물 해체용 분진 비산 방지 가림막, 친환경 건물해체공법 등 다수 분야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성도건설에서 중간 간부로 10년 을 근무하는 동안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구조물 해체 공사는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공사 특성상 일반 건설업체보다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지만 현암건설에서는 다행히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산재가 나오지 않았다.

국내 주요 해체공사 담당

현암건설산업은 지금까지 청계천 복구에 따른 기존 건축물 철거, 한강로 복합빌딩 철거, 대구공항 공군기지 시설물 철거(2010), 김포공항 국제선 기존 교량 및 고래램프 철거(2010), LG U플러스 용산사옥 철거, 아모레퍼시픽 용산사옥 및 용인공장 철거, 서울 신반포6차 재건축에 따른 철거, 풍산특수금속 부평공장 및 롯데칠성 부평공장 철거 등 굵직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2011년에는 제주시 삼양동 소재 한국중부발전에서 기력발전기 철거 공사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삼성물산,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GS건설, 한진중공업, 두산중공업, CJ건설, 삼부토건, 제일제당 등 국내 유수기업에 협력업체로 등록하는 등 국내 대표적인 철거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서울상공회의소 용산구상공회 임직원들과 함께 군부대에 위문 방문을 한 박기찬 대표이사(사진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더불어 사는 삶을 살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박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는 틈틈이 사회봉사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국제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며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자를 위한 봉사 활동을 갖는 등 활발한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10년 전부터 재경제주도민회에서 활동하면서 제주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 출신 건설인들의 모임인 제주건설클럽(JCF), 서울제주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서울제주도민회 장학재단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회장은 탁월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인정받으면서 2015년 제4대 서울상공회의소 용산구상공회장에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상공회를 이끌며 4200여 개 회원사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매년 모교인 추자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해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 회장은 육영수 여사의 초청으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청와대 영빈관 방문을 계기로 섬을 떠나 넓은 세계에서 살겠다는 꿈을 품었다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모교 후배들을 위한 체험학습을 갖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 분야에서 3년만 참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할 게 없습니다.”

박 대표는 “30대에 죽어라 열심히 일했다며 어떤 분야에서든 3년만 열심히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포항에 있는 시멘트 생산업체에 입사한 이후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대전, 대구, 부산, 서울 등 전국을 돌며 영업을 뛰었다.

오전 일찍 출근해 자정을 넘어 귀가하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섬 속의 섬추자도 출신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웃어넘기며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때에는 추자초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바다에 빠지느냐는 질문을, 대학 시절에는 한라산에서 공을 차면 바다에 빠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촌뜨기라는 놀림을 받을 때마다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분발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젊은 시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참고 견디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며 어느 분야에 있더라도 열심히 생활한다면 목표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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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실 2020-12-14 14:12:29
무에서 유를 창조한 멋지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