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질투
죽은 자의 질투
  • 제주일보
  • 승인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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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영혼과의 대화에서는 말하는 입이 아닌 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 단답형 대답이고 진짜냐 거짓이냐 의심이 없어야 한다. 화를 내며 공격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억울하다는 하소연은 혼잣말이 아닌 누구를 꼭 집어낸다. 시기와 장소,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자식에 대한 섭섭함은 숙제이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랑이다. 꿈에서 어떤 암시를 주기도 하고 문득 드는 생각에서 존재감을 보인다. 해달라는 부탁에는 미안하다 또는 감사하다는 진정성을 보이고 남은 이들에게 따듯한 가슴으로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라고 당부를 담긴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오신 분은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해했다. 안절부절 못 하면서 계속 눈치를 보길래 뭘 찾으세요?”하고 물으니 염치없지만 술을 마시고 싶단다. 모양이 우스웠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간단한 상을 차려서 내어 주니 연속해서 잔을 비우셨다. 긴 한숨 끝에 나온 사연은 몇 해 전에 죽은 남편이 매일 꿈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늦게 다닌다고 잔소리에 시시콜콜 따지는 모습이 평상시와 똑같단다. 그리고 일어나면 몸이 무겁고 정신까지 흐려진단다. 이제는 밤이 두렵고 공포스럽단다. 그러다가 술을 배웠는데 이제 중독 수준이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깼다 취했다를 반복하고 싸우자고 시비를 거니 가족도 친구도 멀어졌단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이게 다냐고 물으니 사실은 남편이 심한 의처증에 폭력도 있었단다. 밖에서는 더없는 신사이고 친절한 이웃이었지만 집요함은 고문에 가까웠단다. 누구를 만났느냐부터 시작해서 손을 잡았느냐 기분이 어땠느냐 등 온갖 상상은 현실을 만들어내고 그렇다고 결론을 내렸단다. 논쟁할 가치도 없고 반박이라도 하면 던지고 부수는 통에 그냥 참고 지냈단다. 이제 일상으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자신감마저 떨어진단다.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고 돌려보내고 죽은 이에게 못났다고 꾸짖었다. 이게 원하는 거냐고 하자 한참을 듣고 있더니 온다 간다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꿈에 남편이 나타나 한번 쳐다보고는 미나리를 한단 태워달라 해서 방금 그렇게 하고 나니 이상하게 술 생각이 없어졌단다. 죽어서도 못 고치는 게 의심병이다.

그나저나 미나리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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