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표현하는 물감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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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인간은 다양한 감정, 희로애락을 표출하면서 살아간다. 물감에 의해 다양한 색이 창조되고, 이 색에 의해 복잡한 감정이 표현된다. 감정과 물감의 뿌리는 자연이다. 물감을 이용하여 자연의 색을 모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있다.

물감은 색+, 즉 색을 들이는 물질을 가리킨다. 환언하면 그림을 그리거나 섬유 등을 물들이는 데 사용하는 재료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색소는 안료, 옷감을 물들이는 데 사용하는 것은 염료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하면 안료는 일반적으로 물에 녹지 않으나 염료는 물에 녹는다.

안료는 만드는 재료에 따라 무기안료와 유기안료로 구분한다. 무기안료는 광물성 안료라고도 하며, 과거에는 천연산 광물, 예를 들어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여 백토, 황토, 적토, 녹토 등을 이용제조했다. 유기안료는 보통 유기 화합물을 주체로 한 것이다.

유기안료 중에 천연 유기안료는 동식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원료로 한 것, 예를 들어 남(), 등황(gamboge), 양홍 등이 있다. 많은 천연 염료는 안료로서도 사용되었다. 쪽은 한해살이풀로 인디고(indigo)라는 색소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등황은 천연수지로 고대부터 사용된 대표적인 식물성 천연안료이다. 한라산은 색소의 보고이며, 이 색소에 의해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색의 옷을 입는다.

프랑스 라스코동굴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프랑스 선사시대 동굴벽화 몇몇은 물감의 기원을 보여준다. 이 벽화들의 암갈색과 황토 색소를 분석해 보면 고대 화가들이 산화철과 산화망간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몇 만 년 뒤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고 근동 지역에 문명이 발생하면서 밝은 파란색,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런 색을 사용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이런 색들은 준보석, 특히 청금석, 진사, 웅황, 공작석 등을 갈아서 제조했기 때문이다. 1세기에 와서는 백연(white lead)으로 흰색을 표현했다.

초기에 물감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안료와 달걀 같은 전색제, 그리고 이들 혼합물이 바탕에 쉽게 칠해질 수 있게 하는 희석제를 함께 섞으면 되었다. 기름을 전색제로 사용하는 유화는 15세기 북유럽에서 완성되었다.

초기의 뛰어난 유화작가로는 얀 반 에이크,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한스 멤링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모두 지금의 벨기에 출신이다. 이들은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르네상스에 견줄 만한 또 다른 르네상스를 개척했다.

안료를 기름과 섞으면 이전에 사용하던 물감과 다른 반투명한 색이 되는데 반 에이크와 동료 화가들은 그 유화물감을 얇게 덧칠하여 짙고 밝게 빛나는 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19세기까지 물감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색채를 창조하는 안료와 기름의 혼합물에만 쓰였고, 달걀 같은 다른 전색제를 사용하는 혼합물은 디스템퍼(distemper)라고 칭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나무껍질, 딸기류, 벌레 등을 이용하여 물감을 만들기도 했다. 갈매나무 열매를 갈아 더치 핑크(dutch pink)라는 색, 칠레산 연지벌레 암컷의 몸을 말려서 코치닐(cochineal, 양홍)이라는 밝은 붉은색, 비소를 이용해 밝은 초록색를 제조하기도 했다.

코치닐 색소의 주성분이 카르민산(carminic acid)이다. 이 성분은 생체 내에서 천의 얼굴을 한다. 연지벌레가 카르민산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색소는 오늘날 가공식품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물감의 오랜 역사에서 이미 제조된 것을 그대로 사용한 때는 거의 없었다. 과거에는 초상화를 그리든 집 외벽을 칠하든 모든 물감을 숙련된 기술자가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이용했다.

그러나, 1878년 미국의 헨리 셔윈(Henry Sherwin)과 에드워드 윌리엄스(Edward P. Williams)가 처음으로 여닫는 뚜껑이 달린 통에 미리 혼합한 물감을 넣어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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