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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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같은 금액이라도 손 베일 것 같은 빳빳한 지폐가 내 지갑에 들었을 때 왠지 여유가 생기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게 우리에겐 5만원권(券)이다.

신사임당 초상을 배경으로 2009년 6월 23일 정식으로 세상에 나왔다. 가로 154㎜, 세로 68㎜ 크기다. 1만원권보다 금액이 크고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보다 쓰기 편한 고액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태어났다. 1만원권이 1973년생이니 36년 만의 태동이다. 그 사이 물가는 36배, 국민소득은 150배나 뛰었다.

검색해 보니 5만원권은 1만원권보다 부피가 작은 만큼 007가방에 3억원, 라면 박스에 6억원, 사과 박스에는 12억원 들어간다. 지금 제네시스 승용차에 현금 박스를 실으면 대략 300억원 이상을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올 들어 한국은행의 5만원권 환수율이 2009년 발행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1~10월 환수율이 25.4%다. 작년 60.1%나 2018년 67.4%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실제 지난 10개월간 발행한 5만원권 21조9000억원 중 한은 금고로 돌아온 건 5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나머지 16조4000억원이 잠수를 탔다는 얘기다.

5만원권 실종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코로나19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다. 회식이 줄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현금 쓸 일이 줄었다는 거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같은 이유다. 이왕 현금을 보관하려면 5000원·1만원짜리보다 최고액권이 낫다. 초저금리 현상도 원인으로 꼽힌다. 은행에 맡겨도 이자가 붙지 않으니 그냥 현금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웬만한 직장인 월급이 3만∼4만원이었다. 당시 최고액권이던 1만원짜리 한 장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지인들과 밥술 먹고, 다방 가고도 남았다.

5만원권이 나온 이후 씀씀이 심리도 바뀌었다. 통상 5만원권이 쓰이면서 경조사비를 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실종된 5만원권이 지하경제에 악용된다는 의견도 많다. 휴대와 보관이 편해 정치 자금이나 각종 비자금을 부추긴다는 게다. ‘007가방’과 ‘차떼기’ 등 뇌물 운반 수단으로 쓰인 사례가 너무 많다.

상황이 이럴진대 아무리 많은 돈을 찍어 풀어봐야 역효과만 나타나기 십상이다. 건강한 사람은 피가 잘 돌듯 경제체질이 튼튼해야 돈도 잘 돌아간다. 5만원권 실종은 우리 경제의 ‘돈맥경화’의 상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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