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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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조시인

아내는 상태가 좋지 않은 감저(甘藷) 두 개를 일회용 종이컵에 물만 넣고 심었다. 인내를 시험하듯 움이 트기 시작한 것은 많은 날이 필요했다. 조금씩 커가는 싹이 너무 신비로워 자주 눈이 갔다.

고구마는 감저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에서 들어와서 그런지 이름도 일본의 쓰시마식 발음인 고코이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제주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게 된 것은 제주시 동부두 윗 쪽 주정공장에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해방이 돼도 빼때기(절간고구마), 후엔 생고구마를 마차에 싣고 가 팔았다. 1983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전분공장이 몇 군데 있어서 생산은 계속되었다. 중국에서 당면 및 전분 수입으로 전분공장들도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은 식용으로 소량 재배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고구마는 좋은 간식거리였다. 추은 겨울에 찐 고구마나 군고구마는 때론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찐 고구마를 먹고 있을 때 누가 찾아오면 너 먹을 복이 있다.’ 고 하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 뿐인가. 빼때기를 가루 내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감저 조밥, 감저 범벅, 제사 때 차좁쌀가루에 감저를 썰어 놓고 찐 침떡(시루떡)은 별미 중에 별미였다. 그래서 땅을 파 저장을 해놓고 겨울 내내 먹었다. 지금은 암까지 예방한다는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컵에 심은 고구마는 줄기를 벋기 시작했다. 늘어진 줄기와 이파리는 운치가 있어 어느 화분보다도 돋보였다. 그러나 너무 무성해져서 그대로 놔둘 수가 없어 손바닥만 한 화단에 옮겨 심었더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빠르게 벋어나갔다. 옆에 있는 천일홍 등 화초마저 덮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심을 때가 지났지만 버리기가 아까워 심어보기로 했다. 밭 자투리땅에 이랑을 만들고 줄기 일곱 개를 심었다. 가뭄 때라 자주 물을 줬다. 얼마 후 단비가 내리더니 새순이 돋고 줄기를 벋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주위를 덮을 정도로 왕성하게 자랐다.

상강이 내리기 전 수확을 해야지만, 늦게 심었으니 더 있다 파보기로 했다. 들기나 했을까. 드디어 줄을 걷고 캤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것이 다섯 개 작은 것들도 여럿 나왔다. 너무 기뻤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아내는 내년엔 좀 더 일찍 많이 심었으면 한다. 뭔가 생산을 한다는 것은 삶의 근본인 활력과 성취감을 준다. 그것은 바로 행복과 직결되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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