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한 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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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동문 로터리 버스 정류장 주변은 오래전부터 할머니들의 장터가 열린다. 초겨울 북풍을 등지고 할머니는 호박을 팔고 있었다. 노르스름한 늙은 호박과 늦둥이 애호박 세 덩이에 발이 멈췄다.

윤기 자르르 흐르던 연둣빛 애호박. 어머니는 몇 번이고 더 갖고 가라 채근했지만, 짐이 무겁다고 한 덩이만 갖고 내려왔었다. 새우젓에 볶아 맛있게 먹으면서 후회했다. 간절히 주고 싶어 하셨던 마음이, 꼭 호박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늦은 생각으로 목이 메었다. 빈손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추석이 가까울 무렵이다. 몇 달째 코로나19로 갇혀 답답해하셨다. 바람도 쐴 겸, 마늘을 사러 청량리 경동시장에 갔다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셨다. 어머니의 김치는 맛있기로 소문나 딸이며 손자들까지 퍼 나른다. 힘들어도 일상의 낙으로 여겼다. 국물이 알싸해 시원한 동치미, 아삭거리는 총각김치며 깍두기까지. 배추김치는 삼삼하고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김치를 담아 추석 때 모이면, 먹이고 싸 보내려고 하다 사고가 났다.

다행히 경미한 뇌출혈로 약물치료 중이다. 일주일간의 병원 생활을 못 견뎌 서둘러 퇴원을 하셨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맥을 놓은 낯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렸다. 구십 삼세로 적지 않은 연세다. 자식은 물론 충격으로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만큼 입맛을 잃었다. 당신은 영 회복 못한 채 그대로 명을 놓을 것 같다며 두려운 빛이 역력했다. 좋아하는 냉면이며 고향에서 간장게장을 주문해 드렸다. 고향 음식이라고 맛나게 드시는 걸 보면서 한시름 덜었다.

지금까지 병치레를 하신 적이 별로 없다. 어머니 덕에 자식들이 효자라는 말을 듣곤 했다. 부지런하고 활동적이라 모이면 먼저 노래방에 가자하신다. 오래전 전국노래자랑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후, 지하철을 타고 노래 교실을 신나게 다니셨다. 하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노년의 삶을 즐기시던 어머니. 신앙심이 깊어 일요일 성당에 미사 드리러 가는 걸 큰 기쁨으로 여겼다. 아직 널려 있을 어머니가 보지 못한 세상, 즐기지 못한 일을 응원하며 지켜보곤 했다.

조그마한 텃밭에서 봄부터 갖가지 채소를 기르신다. 여름내 상추를 길러 나눠 주고, 열무로 물김치를 담아 자식들에게 보낸다. 제주까지 택배로 보내와 상추와 깻잎, 쑥갓을 맛있게 먹는다. 가을이면 고구마를 캐 간식거리를 마련하고 호박을 심어 넝쿨을 둔덕으로 올렸다. 올여름은 비가 잦아 호박 농사가 시원치 않을 것 같아 낙심했는데, 늦게 주렁주렁 열렸다고 좋아하셨다. 어머니 텃밭 채소는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보내는 원초적 모성의 영양공급처다. 한여름 입맛을 잃었을 때,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지는 여린 푸성귀에 큰 위안을 받곤 한다.

황망하게 올라가면서 어머니가 잘못될까 두려웠다. 당신은 이제 가도 원이 없지만, 죽음보다 거기까지 다다르는 동안 병치레로 인한 고통,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두렵다고 나지막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따뜻한 봄날 훈풍에 날리는 꽃잎처럼 가벼이 가시길 소망하면서. 며칠 남지 않은 성탄절에 명동성당에 미사 드리러 갈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코로나19가 어머니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호박 한 덩이 갖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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