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탄생
거룩한 탄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여러 해 전에 어느 모임에 갔는데, 나이 많은 여성들이 내 뒤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쓸모가 없어지더라는 이야기였다.

남자들은 늙어가면서 점점 더 마누라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멀리 이사라도 갈 때면, 마누라가 혹시 버리고 가지나 않을까 해서 이삿짐 트럭에 먼저 올라타려 한다고 했다.

그런데 트럭에 앉을 자리가 부족한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늙은 남편은 부인이 아끼던 장롱 속에 자리 잡기로 했다. 그 장롱 안에 들어가 있으면 부인과 함께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삿짐을 다 싣고나서 부인은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장롱은 너무 낡았으니까 이참에 새로 바꾸어야겠구나!” 그래서 남편이 들어있는 장롱은 놔두고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든 여성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주변에 앉은 남자들을 협박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이사 갈 때는 조심하시오. 장롱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보시오. 남자들이여! 젊은 시절에 좀 잘 하지 그랬소. 젊을 때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니까, 늙어서 구박을 받는 거 아니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자들은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아 간다. 소중한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에서 남자들이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랑과 희생과 인내와 진실 등의 언어들은 여성들에게 조금 더 친숙한 듯하다.

사랑이나 희생이나 진실 쪽에는 별 관심 없는 남자들이 정치·사회적 권력자요 지배자로 살아온 것이 보편적인 세상 역사이다.

권력과 지배의 현역일 때 남자들은 현실주의자들이다. 권력의 현실이 언제까지나 내 뜻대로 유지될 것처럼 살아간다는 의미의 현실주의자인 것이다. 그런데 무척이나 경쟁적인 남성적인 정치권력의 현실은 때가 되면 보다 더 경쟁적인 다음의 현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는 권력일수록 수명은 짧고 내려오는 길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사랑이나 희생이나 인내나 진실 때문에 누군가와 피흘리며 싸우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경쟁은 주로 자기 자신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탄절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을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그 아기를 경쟁 대상으로 삼았던 세상 권력자 헤롯은 베들레헴 근처의 아기들을 다 죽이고 말았다.

사랑과 희생과 진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비경쟁적인 탄생을 거룩한 탄생이라 해서 성탄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탄생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유아학살을 배경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둡고 끔찍한 경쟁적인 세상 권력을 무대배경 삼아 성탄의 밝은 빛이 비쳐온 것이다. 학살이 잔인한 만큼 거룩한 새로움도 밝게 다가왔다는 것이 성탄에 대한 성서적 메시지가 되는 셈이다.

경쟁적인 세상 권력은 때가 되면 감추었던 뒷모습을 내보이면서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사랑과 희생과 인내와 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귀하게 여겨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