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조미미가 부른 ‘바다가 육지라면’의 노랫말이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육지와 떨어진 섬의 운명을 감정이입한 듯하다. 여기에서 바다는 만남을 가로막는 어찌할 수 없는 장벽으로 인식된다.
제주는 150만년에서 200만년 전에 화산섬으로 태어났다. 빙하기에 육지와 연결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해상왕국인 탐라국 시대에는 바다를 누비며 주변 나라들과 교류했다. 한반도 육지부에 한정하지 않고 중국, 일본, 동남아에 이르는 폭넓은 교역망을 구축했다. 몽골제국이 직접 통치하던 탐라총관부 시기에는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중국과의 직항로를 통해 세계제국의 네트워크 속에 편입되기도 했다. 제주의 양마가 몽골제국으로 수출되면서 호경기를 누렸다.
행정적으로 완전히 한반도에 포섭되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제주의 바닷길은 전라도 남해안을 연결하는 항로로 제한되었다. 육지에서 제주로 가는 항로는 영암의 이진, 강진의 남당포, 해남의 관두포 등지에서 출발하여 추자도를 거쳐 제주도의 조천이나 화북으로 연결되었다. 시기에 따라 구체적인 항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남해안의 섬과 추자도, 관탈도 등이 연안 항로의 주요 경유지가 되었다. 남해안에서 제주까지의 여정은 바람이 잘 맞으면 반일 만에 도착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했다. 범선 항해 시대에 바람은 항해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1890년대 증기선의 보급은 제주 바닷길의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바람은 항해에서 더 이상 결정적 요인이 되지 못했다. 바람의 방향이 다르더라도 배는 기존 항로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다. 선박 제조기술이 진전됨에 따라 최근에는 고속훼리로 제주와 남해안을 2시간여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제주 바닷길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논의가 행해지고 있다. 전라남도 지역의 국회의원과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호남고속철도를 제주까지 연장하자는 것인데, 목포-완도-보길도-추자도까지는 교량으로 연결하고 추자도에서 제주까지는 해저터널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된다면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소망이 실현되면서 제주는 더 이상 섬이 아닌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할 제주도는 정작 관심이 없다. 제주도의 일부 국회의원이 동조하는 듯하지만 도지사를 비롯한 관계나 학계의 관심은 싸늘하다. 종착지인 제주도가 아닌 경유지인 전라남도에서 군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하지만 섬이라는 지역정체성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육지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섬은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변방에 불과하다. 그러나 섬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광활한 바다를 넘어 어느 곳으로 갈 수 있는 막힘없는 중심지가 된다. 제주가 해저터널로 육지와 연결되어 접근성이 좋아진다면 육지와 제주와 연결성은 강화되겠지만 제주가 지니는 동아지중해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살리기는 어렵다. 제주는 ‘한국 속의 제주’가 아닌 ‘세계 속의 제주’로 전 세계인이 자유롭게 찾는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상학, 제주대학교 지리교육전공 교수·박물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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