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도 봄이 다시 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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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4·3조사연구원·시인

나에게

정말 봄이 왔습니다.

유채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2020년 12월 7일, 92세의 김두황 어르신이 4·3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다. 4·3 당시 일반재판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72년 만이다.

이 판결에 앞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게 한 것은 2019년 1월 17일에 있었던 4·3불법군사재판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이다. 이 재심 재판에서 열여덟 분의 수형생존 어르신들이 무죄판결에 준하는 공소기각판결을 받은 것이다. 십대 소년 소녀에서부터 스무 살 초반의 청년과 아기엄마가 내란죄, 간첩죄 등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1년에서부터 20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인천, 전주, 대구, 마포형무소 등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천우신조로 형무소에서 살아 돌아왔으나 창살 없는 감옥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연좌제의 고통은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도 옭죄었기 때문이다.

억울해도 억울하다는 말조차 못하고 숨죽여 살아온 70여 년 세월. 무죄판결로 죄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누구 앞에서든 떳떳할 수 있다고, 이제는 링거를 두 병씩이라도 맞아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동네 사람들과 제주도 사람들과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만세를 부르던 그날의 모습이 생생하다.

특히 평소 말씀도 거의 없으시고 나서는 걸 싫어해서 인터뷰도 사양하시던 99세 임창의 어르신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판결 후 최후변론 하실 분 계시냐는 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일하게 임창의 어르신이 손을 번쩍 들었다.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임창의 어르신이 손을 들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증언석으로 밀어드렸다. 법정 안이 고요에 휩싸였다.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귀를 쫑긋 세웠다. 휠체어에 앉으신 어르신의 손에 마이크가 들려졌고 그녀는 청중을 향해

“나, 죄 어수다!”

가슴속 한을 풀 듯 꼭꼭 씹으며 말을 했다. 그녀의 최후진술은 이게 전부였다. 더 이상 말씀은 없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던 분이 대범한 사람도 위축된다는 법정에서 “나, 죄 어수다!”라고 딱 한마디로 최후진술을 한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은 분들은 재심이라는 법 절차를 통해서 무죄판결을 받아냈지만 아직도 대다수 4·3수형인들은 명예회복을 못한 상태이다. 죄도 만들어졌고 불법구금에 고문까지 자행하고 형무소에 가두었던 권력. 함부로 휘두르는 그 권력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의 민초들. 군사재판이든 일반재판이든 4·3수형인들은 이러한 무소불위의 권력이 만들어낸 죄인 아닌 죄인들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누구에게 있든 오만방자할 수밖에 없어서 문제가 생긴다. 이런 권력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견제와 균형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4·3때처럼 악몽 같은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멋대로의 철옹성 권력은 반드시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의 봄을 찾아와야 한다.

봄이 가도 봄이 다시 오듯 김두황 어르신의 말씀처럼 유채꽃 활짝 핀 봄이 우리 앞에 펼쳐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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