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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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날을 정리하고 새날을 기다린다.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계획한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동지를 정점으로, 음기는 점차 사라지고 양기가 치성하여 봄이 찾아온다. 봄이 되면 음기가 양기에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을 수 없다. 긴긴 겨울을 참고 견디면 희망의 봄날은 온다. 설령 지금이 겨울인지 언제까지 겨울이 계속되어야 하는지는 모를지라도, 기다리는 봄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세상 이치란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처음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오늘이 춥고 힘들더라도, 때가 되면 말끔히 걷히고 따뜻하고 행복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한 해를 정리하듯, 이 자리에 서서, 그동안 다하지 못했던 일은 없었는가, 아직도 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없는가를 돌아본다. 그동안 맺었던 인연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내가 그동안 가졌던 것이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별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니,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리라. 그리고 날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리라.

그나마 후회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음일까. 아직도 남겨둘 것이 있어서 인연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지금도 쓸모가 있다고 하니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인연을 정리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당분간은 쉬었다가, 또 다른 새로운 무엇을 찾아 부산하게 살고 싶다. 그동안 해왔던 것도 앞으로 할 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옳고 그름을 알고 살아왔으니,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어제도 오늘도 그 날이 그날이면 재미가 없어서, 항상 새로운 날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렇게 날마다 새로운 것을 꿈꾸며 하루하루 쌓아 가며 살다가, 어느 날 적지 않은 것을 가진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내가 되었고, 또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를 꿈꾸며 살아왔다.

그것이 가치가 없는 것이라도 좋다. 결코 정의로운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적도 없었고, 도리에 어긋난 적도 없었으니, 훗날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울 것을 기대하며 행복하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르고, 부끄러운 과거를 숨겨 진실을 왜곡하고, 형편없는 실력을 감추려고 입만 열면 변명하기 바쁘다가, 어느 날 사기꾼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때에 이르러 비로소 후회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많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자신과 무리들의 이익을 챙겼고, 여의치 않으면 힘을 이용해 윽박지르며 잘 살아왔지만, 때가 되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부끄러운 선조의 후손들은 선조의 이름을 꽁꽁 감추며 산다. 선조 때는 좋았겠지만, 그 오욕은 후손이 떠안는다.

요즈음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식의 앞날을 망쳐버린 이가 많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발버둥 친다. 세상이치가 정점에 이르면 아무 것도 없었던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지금의 모든 것이 허망한 것임을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어둠의 긴 터널을 건너 온 것일까? 이제 서서히 서광이 비친다. 이제라도 내려놓으면 자식들이나마 보호받을 수 있을 터인데, 이를 어쩌나, 자식들마저도 저 모양이니, 큰 집에 빈 방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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