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熱風)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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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코로나19는 2020년 내내 공연예술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비대면 상황은 청중과의 직접적 만남보다 티브이와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한 만남에 진력도록 했다. 그런 상황에서 트로트는 종편에서부터 지상파 방송까지 장악하며 2021년을 맞으려 한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데 트로트는 ‘열풍’이다.

‘송가인’은 「미스트롯」에서 등극해 팬덤 현상까지 빚어낸다. 2집 ‘몽(夢)’은 트로트의 새 역사를 쓰는 작품이라 극찬 받는다. ‘나훈아’는 15년 만에 소환돼 「테스 형」을 부르며 29% 시청률을 올렸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등장한 ‘임영웅’과 트로트 전사들은 방송을 거의 접수해 버렸다. 과거 대중음악계를 장악했던 트로트가 자리보전도 어려워 보이다가 2020년에 음악 영토를 다시 장악한 것이다.

“상투적 대중 취향 안에서도 거의 본능적으로 빛을 발하는 리얼리티의 마력”(강헌, 1997.)을 지닌 것이 트로트란다. 향수, 사랑과 이별, 성공과 실패, 눈물과 술 따위의 모티프들은 트로트의 상투성과 통속성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 트로트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보다 대중이 듣고자 하는 세계를 제공한다고 한다. 세밀한 묘사나 감성이 부족하다는 표현일 게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일제 강점기의 설움, 전쟁의 참상이나 이산의 아픔, 개발독재 시기의 탈향과 도시 생활 등 시대를 반영하며 꿈틀댔다. 예컨대, 「굳세어라 금순아」가 1·4후퇴 직후에 발표되며 이산의 아픔을 녹여냈고, 1983년의 「잃어버린 30년」은 남북이산가족 찾기의 설움을 표현했다. 트로트는 세련된 시적 언어는 아닐지 몰라도 대중의 취향에 가장 근접한 표현에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따위의 리듬을 잘 버무리며 한국인들의 문화적 유전자를 형성해냈던 것이다. 2020년 방송계는 이 유전자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

물론 트로트의 음악적 특성만으로 열풍을 이끌 수는 없다. 트로트의 감성, 시청자들을 견인하는 오디션 경쟁 시스템, 게다가 참가자들의 굴곡진 삶의 스토리 등을 잘 포장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냈다. 음악에 대한 열망은 연봉 100만 원으로도 버티게 했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는 출연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편곡 실력과 화려한 춤사위가 곁들여지면서 경연은 시청자들을 티브이 앞에 붙들어놓았다. 열풍을 이끈 연출이었다.

그런데 열풍의 밑바탕에는 ‘시청률’이 존재한다. ‘시청률’은 ‘돈’과 비례한다. 방송사는 시청자들 머릿수를 광고주들에게 판매한다. 시청률 ‘35.71%’라는 「미스터 트롯」의 경이적 기록은 지상파 방송까지 트로트로 채우도록 만들었다.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실력 없어(?)’ 떨어지는 참가자들을 방송국이나 국가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으며, 음악적 다양성도 필요 없었다. ‘트로트’가 ‘트렌드’일 때 그걸 써먹다 버리면 된다. 트로트 열풍은 이런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음악이 다양성을 잃으면 문화 생태계는 쇠약해진다. 록, 힙합, 포크, 발라드가 살고, 판소리도 살아야 하며, 무명가수도 살아야 한다. 시청률에만 매몰돼 편식을 일삼으면 음악은 황폐해진다. 음악은 대중의 정서를 녹여내며 화합을 도모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트로트 열풍은 한동안 소외되었던 장르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다행스러우면서도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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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진 2020-12-30 22:12:54
음악적 다양성과 시청률의 아이러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교수님^^

김은주 2020-12-30 21:34:30
선생님의 강의들 듣는 수험생이라 그런지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
글 잘 읽고 갑니다

썬T 2020-12-30 20:57:33
교수님의 글을 읽고나니 영탁의
막걸리한잔을 듣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