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不信, 일상이 되다
불신不信, 일상이 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운진 동화작가

새벽 연북로가 고요하다. 불야성을 이루던 인근 장례식장은 마스크를 낀 상주들만 주검 앞에 도열해 있다. 곧 발인發靷을 하고 떠나야 하는 주검들만이 새벽을 여는 것 같은 생각에 이르자 일상이 점점 낯설고 불안으로 다가오는 건 어인 일일까?

#에피소드1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으며 마스크를 내리자고 한다. 이어 뒤에서 무슨 소리냐고 언성을 높인다.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올리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에피소드2 맞은편에서 부부가 걸어온다. 좁은 인도라 난 재빨리 마스크를 올리며 무장을 한다. 이를 본 부부도 재무장을 위해 마스크를 꺼낸다.

#에피소드3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었던 탓일까? 가슴이 답답하다. 늦은 밤 도시 속으로 드라이브에 나섰다. 간간이 택시만이 애타게 손님을 기다릴 뿐 오가는 차량은 물론 인적도 끊겼다. 음식점들마저 불을 꺼버려 유령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걸어가는 도시엔 불신不信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에피소드4 딩동 벨 소리에 고개를 내밀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예 택배입니다. 2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이 두렵다. 예 그냥 거기 문 옆에 놔주십시오.

#에피소드5 아직 24개월도 되지 않은 손녀가 제 엄마와 대문 밖을 나선다. 마스크를 벗지 않도록 신신당부하는 할머니와 마스크로 작은 얼굴을 다 가린 손녀의 모습이 가련하다.

지난해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한 지가 일 년이 넘었다. 180만 명이 넘는 인명을 빼앗아갔으며 그러고도 모자라 인간이 공격무기도 만들기 전에 바이러스는 다시 변이를 계속하며 더 강력하게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욕심이 바벨탑의 저주를 불러왔듯 자연을 파괴하고 인류 문명을 쌓은 인간에게 신은 바이러스로 저주를 내리는 건 아닐까? 창세기 바벨탑의 저주와 함께 작금昨今 신종바이러스도 인간을 불신의 늪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백신이 개발되었다고는 하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족 한 사람이 감염된다면 모두가 감염되기에 가족 간에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언제면 끝날 것인가? 마스크를 벗은 채 아이들이 마음 놓고 호흡하며 가슴을 펴고 달려나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정다운 사람들마저 불신할 수 밖에 없었던 2020년이 저물고 이제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정말 새해에는 모든 이에게 소소한 일상이 기쁨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오늘이 소한小寒이지만 이제 곧 들려올 봄소식과 함께 코로나19 소멸 소식도 함께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