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양보하기
일자리 양보하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양재봉, 수필가·시인

급속히 늘어난 코로나19 확진자로 산업전선이 흔들린다. 교육이 마비되고 학원 운영자나 강의로 먹고사는 사람, 음식점 같은 곳은 더 타격이 심한 듯하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빚도 늘어 빈곤층이 많아진다. 다행인 것은 택배나 배달 같은 호황인 곳도 있다.

환경을 위한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일행을 태우고 비 오는 거리를 달렸다. 평화로에 들어서니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비가 덜 내리는 곳은 안개로 사위가 뿌옜다. 옆자리엔 L 선생이 앉았다. 그는 몇 년 전 배우자와 사별하고 홀로 3남매를 키워 왔다. 남편이 오랜 세월 와상환자로 있을 때 알뜰히 모았을 노후 자금은 물론 국민연금마저도 일시불로 받아 모두 병원비로 지불했다며 가느다란 한숨을 쉰다.

억척스러운 사람이다. 아직 학교를 마치지 못한 자녀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혼기 앞둔 아이들 걱정도 큰 시름이다. 자연 해설사와 오름 지킴이에 참여한다. 푼돈 벌이지만 봉사의 의미를 담고 사람들 앞에 서거나 험한 산길을 걸어왔다.

그가 걷는 종종걸음은 운동 삼아 하는 걸음이 아니다. 발이 아파도 걸어야 한다. 순번이 돌아오면 가야 하는 길, 자연 해설사 일은 아프거나 일이 있어 빠지면 소득이 줄기에 악착같이 붙잡아야 한단다.

일자리 창출로 생겨난 오름 지킴이도 다름없다. 시급 9000여 원을 받기 위해 오름을 오른다. 주어진 차례를 빠지지 않고 나가야 한 달에 20~30만 원을 손에 잡는다. 감기가 들었어도 길을 나서야 하는 그다.

지지난해에 오름 지킴이 양성 강의로 여러 날 출강했었다. 대상자는 직장에서 퇴임한 사람이거나 그와 비슷한 분들이다. 길을 걸으며 그들이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

“부러 운동 삼아 산도 오르는데 돈도 받고 운동도 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그래,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일세, 공짜 운동에 공으로 먹을 소주도 쥐어주니.”

교육생 태반이 좋은 직장에서 퇴임한 분들이다. 300~400만 원의 퇴직 연금을 받는 사람도 많다. 일자리 창출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강의에 열중하다 보니 관심이 엷어졌다. 참여자 중 몇 만이 푼돈이라도 벌어 보자고 신청한 사람이다.

L이 힘 빠진 소리로 한탄한다. “그분들은 운동이나 재미로 참여하고 받은 돈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웃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은 생업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분들은 봉사로 오름을 오가도 좋으련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려 본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라는데. 생각에 미치지 못했던 일, 그분들이 스스로 그 자리를 비워 주면 어떨까.

우리 주변엔 소득이 적은 가정이 뜻밖에 많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노동, 취로 사업, 오름 지킴이 같은 일자리가 넉넉해 그들 몸값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풍족하진 않지만 아껴 쓰면 생활비 걱정은 덜어낸 지인이 있다. 가끔 일손이 모자란 농가로 귤을 따러 간다. 정해놓은 그만의 약속이 있단다. 귤을 따서 벌어야 사는 사람들 일자리를 빼앗지 않기 위해 여러 날 일 하지 않기, 어려운 농가를 위해서는 품삯을 받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을 땐 일부만 받기.

신축년 새해엔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서민들이 마음 놓고 노동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쪽빛 2021-01-07 10:01:07
절대 공감합니다.
어느 일자리나 지원자들 나름의 이유야 있겠지만
경제적으로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덜 필요한
사람들의 자발적 양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