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時機)와 기회(機會)의 조화(調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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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장/논설위원

조선시대의 폭군 연산군 집권 시에는 무오사화(戊午士禍), 갑자사화(甲子士禍) 등의 많은 희생을 불러일으킨 참혹한 시기였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연산군도 종지부를 찍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중종반정(中宗反正)인데, 이와 관련하여 ‘조광조’라는 인물이 빼놓지 않고 등장하게 된다.

그는 당대 사림의 핵심적 인물로 명성을 알리며 득세하였고,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과 함께 도학정치(道學政治)를 실현하려 하였으나, 왕성한 혈기를 앞세워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을 실현하는 데만 급급하여 훗날 너무 급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이는 ‘율곡전서’를 통해 “오직 한 가지 애석한 것은 조광조가 출세한 것이 너무 일러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 아직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는 충현(忠賢)도 많았으나 이름나기를 좋아하는 자도 섞이어서 의논하는 것이 너무 날카롭고 일하는 것도 점진적이지 않았으며,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 기본을 삼지 않고 겉치레만을 앞세웠으니, 간사한 무리가 이를 갈며 기회를 만들어 틈을 엿보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신무문(神武門)이 밤중에 열려 어진 사람들이 모두 한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기(士氣)가 몹시 상하고 국맥(國脈)이 끊어지게 되어, 뜻있는 사람들의 한탄이 더욱 심해졌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당대 공신 세력의 반격을 받아 화를 입게 된다. 기묘사화에서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일화로 유명한데, 이는 대궐 후원에 있는 나뭇가지 잎에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 꿀로 글을 써 그것을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자연스럽게 생긴 양 꾸미어 왕에게 고하도록 한 것이다. ‘주초(走肖)’는 합쳐 쓰면, 즉 ‘조씨(趙氏)’가 왕이 된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지경이 되자, 조광조와 사림세력을 발탁했던 중종 역시 마음을 돌리게 되고, 이를 알아챈 남곤, 심정 등은 밤중에 갑자기 대궐로 들어가 조광조의 무리가 모반하려 한다고 아뢰었다. 이 사건으로 조광조는 하옥되고, 그 후 귀양을 가게 된다. 얼마 뒤에 남곤, 심정 등의 주청으로 조광조와 사림세력들은 모두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당시 조광조의 나이는 43세라 전해진다.

조광조는 ‘얻기 어려운 것은 시기(時機)요, 놓치기 쉬운 것은 기회(機會)다’라는 말을 남겼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지당한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조광조 본인은 시기를 알지 못하였고, 기회를 너무 쉽게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꿈같은 시기에 혈기를 앞세워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기회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를 잃고 그것이 기회였음을 후회하는 일도 다반사(茶飯事)다. 더군다나 시기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닥뜨리게 되기에 짐작하거나 잃게 되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인지하고 준비된 기회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사례도 접하게 된다. 기회로 시기를 리드할 수 있는 대목을 엿보게 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시대를 맞고 있다. 코로나 시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역시 기회는 존재한다. 어려운 시기에 어울리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기회를 놓쳐 더욱 어려운 시기로 전락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조광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기회가 시기를 만들어 가는 조화점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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