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 꽂히다
배구에 꽂히다
  • 제주일보
  • 승인 2021.01.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코로나로 흔들리던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못 만나고 못 보고 못 가고 못 한다. 삶이 상당히 멈춰 버렸다. 궁여지책인가. 비대면에 익숙해지며 새 버릇이 생겼다. 뜻밖에 2020~2021 프로배구 리그를 시청하느라 정신이 없다.

스포츠 채널에서 배구 경기를 시청한다. 남녀 팀별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순위 다툼이 여간 치열하지 않다. 축구 A 경기는 TV를 끼고 앉는 열혈팬인데 배구는 아니었다. 한데 집콕하면서 고적감을 물린다고 몇몇 경기를 시청한 게 그만 배구에 꽂혀 버렸다.

배구의 변화에 놀랐다. 힘과 속도, 기술과 조직의 배구였다. 강서브와 강스파이크, 시간차·후위 공격으로 볼이 총알처럼 날아가 꽂히는데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다. 손이 볼을 때릴 때마다 ‘딱’하고 나는 경음(硬音)이 정도 이상 위협적인데다 전광석화다. 번쩍하면 볼이 꽂히니 눈이 못 따라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몸속 세포가 놀라 깨어나 자지러질 지경이다.

너무 자극적이라 채널을 여자 배구 쪽에 맞췄다. 남자에 비할 건 아니나 예전 배구가 아니다. 강서브를 구사하는가 하면 힘과 속력을 제지하는 블로킹의 위력, 거기다 몸 던지는 리시브는 놀랍다. 선수들은 과연 프로였다. 강한 소속감이 전의(戰意)를 불사른다. 동점과 역전의 연속으로, 불꽃 튀기는 경기라 눈을 뗄 수가 없다.

남자 경기는 총알 같은 강서브와 강스파이크가 지배함에도 몇 번인가 오가는 볼을 끊는 건 속사포로 꽂히는 볼을 받아 내는 리시브였다. 볼이 닿을 지점에 나란히 모은 두 손과 두 팔이 이미 가 있다. 쓰러지면서 받는 데 실패해도 몸이 볼 쪽에 가 있으니 정신 일도(一到)다. 대단한 집념이 리그 경기 현장을 열기로 뜨겁게 달군다. 코로나로 무관중이지만 이 배구의 현장은 안방으로 순간순간 택배된다. 지칠 대로 지친 국민에게 위안이 될 법하다. 비대면 시국에 스포츠 중계는 질병을 향한 강스파이크다.

축구는 한 골 터지는 순간을 기다려 지루한데, 배구는 한 찰나에 득실이 이뤄진다. 코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볼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일희일비하는 선수들 숨결이 바로 전이돼 같이 뛰는 것 같다. 그게 배구다.

특히 여자 선수들. 힘들게 살려낸 볼이 득점과 연결될 때의 그 촉촉한 눈빛, 끝내 실패했을 때 세상 무너진 것같이 실망하는 표정. 쓰러진 선수를 손잡아 일으키는 따뜻한 동료의 손과 웃음이 있다. 승패에 앞서 가장 인간적인 건 아름답다.

배구 경기 시청에 빠져들어 간다. 때로 상대 코트에 내리꽂히는 볼이 만들어 내는 서브 에이스. 절묘한 궤적이 수비를 허물고 득점으로 이어진다. 황금 같은 그 한 점이 세트 스코어 2대 2 뒤, 마지막 5세트일 때 승리에의 기여도는 결정적이다. 코트에 흐르는 긴장감에 눈을 떼지 못한다.

팀마다 한 명씩 배정된 외인 선수들이 키가 크고 기량이 탁월하지만, 우리 선수들의 세기(細技)도 그에 못잖다.

김연경 선수는 과연 여제(女帝)답게 압도적이다. 192㎝의 훤칠한 키에 힘과 내공이 만들어 낸 그의 배구는 사뭇 클래스가 다르다. 그보다 그는 선수 이전 한 자연인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잘한 선수를 다독거리고, 팔로 안아 올려 부추겨 주기도 한다. 선수 이전에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어 어느새 그의 팬이 됐다.

‘딱’, 강스파이크가 코로나19에게 꽂혔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