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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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코로나로 흔들리던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못 만나고 못 보고 못 가고 못 한다. 삶이 상당히 멈춰 버렸다. 궁여지책인가. 비대면에 익숙해지며 새 버릇이 생겼다. 뜻밖에 2020~2021 프로배구 리그를 시청하느라 정신이 없다.

스포츠 채널에서 배구 경기를 시청한다. 남녀 팀별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순위 다툼이 여간 치열하지 않다. 축구 A 경기는 TV를 끼고 앉는 열혈팬인데 배구는 아니었다. 한데 집콕하면서 고적감을 물린다고 몇몇 경기를 시청한 게 그만 배구에 꽂혀 버렸다.

배구의 변화에 놀랐다. 힘과 속도, 기술과 조직의 배구였다. 강서브와 강스파이크, 시간차·후위 공격으로 볼이 총알처럼 날아가 꽂히는데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다. 손이 볼을 때릴 때마다 ‘딱’하고 나는 경음(硬音)이 정도 이상 위협적인데다 전광석화다. 번쩍하면 볼이 꽂히니 눈이 못 따라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몸속 세포가 놀라 깨어나 자지러질 지경이다.

너무 자극적이라 채널을 여자 배구 쪽에 맞췄다. 남자에 비할 건 아니나 예전 배구가 아니다. 강서브를 구사하는가 하면 힘과 속력을 제지하는 블로킹의 위력, 거기다 몸 던지는 리시브는 놀랍다. 선수들은 과연 프로였다. 강한 소속감이 전의(戰意)를 불사른다. 동점과 역전의 연속으로, 불꽃 튀기는 경기라 눈을 뗄 수가 없다.

남자 경기는 총알 같은 강서브와 강스파이크가 지배함에도 몇 번인가 오가는 볼을 끊는 건 속사포로 꽂히는 볼을 받아 내는 리시브였다. 볼이 닿을 지점에 나란히 모은 두 손과 두 팔이 이미 가 있다. 쓰러지면서 받는 데 실패해도 몸이 볼 쪽에 가 있으니 정신 일도(一到)다. 대단한 집념이 리그 경기 현장을 열기로 뜨겁게 달군다. 코로나로 무관중이지만 이 배구의 현장은 안방으로 순간순간 택배된다. 지칠 대로 지친 국민에게 위안이 될 법하다. 비대면 시국에 스포츠 중계는 질병을 향한 강스파이크다.

축구는 한 골 터지는 순간을 기다려 지루한데, 배구는 한 찰나에 득실이 이뤄진다. 코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볼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일희일비하는 선수들 숨결이 바로 전이돼 같이 뛰는 것 같다. 그게 배구다.

특히 여자 선수들. 힘들게 살려낸 볼이 득점과 연결될 때의 그 촉촉한 눈빛, 끝내 실패했을 때 세상 무너진 것같이 실망하는 표정. 쓰러진 선수를 손잡아 일으키는 따뜻한 동료의 손과 웃음이 있다. 승패에 앞서 가장 인간적인 건 아름답다.

배구 경기 시청에 빠져들어 간다. 때로 상대 코트에 내리꽂히는 볼이 만들어 내는 서브 에이스. 절묘한 궤적이 수비를 허물고 득점으로 이어진다. 황금 같은 그 한 점이 세트 스코어 2대 2 뒤, 마지막 5세트일 때 승리에의 기여도는 결정적이다. 코트에 흐르는 긴장감에 눈을 떼지 못한다.

팀마다 한 명씩 배정된 외인 선수들이 키가 크고 기량이 탁월하지만, 우리 선수들의 세기(細技)도 그에 못잖다.

김연경 선수는 과연 여제(女帝)답게 압도적이다. 192㎝의 훤칠한 키에 힘과 내공이 만들어 낸 그의 배구는 사뭇 클래스가 다르다. 그보다 그는 선수 이전 한 자연인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잘한 선수를 다독거리고, 팔로 안아 올려 부추겨 주기도 한다. 선수 이전에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어 어느새 그의 팬이 됐다.

‘딱’, 강스파이크가 코로나19에게 꽂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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