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독경(牛耳讀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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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코로나19, 정쟁(政爭), 이상 기후로 점철된 한 해가 저물고, 그예 새해가 밝았다. 잔뜩 찌푸린 날씨 탓에 기대하던 일출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긴 터널 안에서 한 줄기 빛을 향해 질주하듯이 여러 기원을 담아 손을 모으고 한참을 묵묵히 서있었다. 문득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기도하는 손이 떠올랐다. 손가락이 굳도록 일을 하며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친구의 손! 아마도 그는 고마움과 감격의 눈물을 섞어 그 그림을 그렸으리라.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신축년(辛丑年)은 하얀 소의 해다. 여덟째 천간(天干)인 신()의 오방색이 흰색이기에 그러하다. 소는 힘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고, 동작은 느리지만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으로 힘든 일을 우직하게 해낸다.

어디 그뿐이랴. 시인 정지용은 향수에서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을 차마 잊을 수 없음을 노래하였고, 화가 이중섭은 소의 매력에 심취하여 스물다섯 점이나 되는 명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누구나 불러봤을 동요 송아지를 비롯하여 영화

워낭소리에 이르기까지 소는 문예 작품의 훌륭한 소재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동물이다.

속담이나 사자성어에도 소가 넘쳐난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소가 뒷걸음질 하다 쥐 잡은 격.”, “겨울 소띠는 팔자가 편하다.”, “빈집에 소 들어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등의 속담들은 삶의 지혜나 교훈을 담고 있다. 교각살우(矯角殺牛), 대우탄금(對牛彈琴), 우보만리(牛步萬里), 우이독경(牛耳讀經)같은 사자성어의 의미도 깊이 되새겨볼 만하다.

아마 그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회자하는 말은 단연 마이동풍과 벗하여 사용하는 우이독경일 것이다. 소는 길들이기 쉬운 가축이지만, 일단 길들이고 나면 좀처럼 버릇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황소고집이란 말도 그런 연유에서 등장했을 터. “쇠귀에 경 읽기.” 매사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고집불통인 사람에게 아무리 하소연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벽창호(碧昌牛)’라는 말도 있다. 벽이나 창에 붙이는 창호지가 아니다. 원래 벽창우인 이 말은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지방의 크고 억센 소를 일컫는데, 우둔하고 옹고집인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혹여 여의도와 백악산 기슭에 아직도 그런 분들이 머물고 계신 것은 아닐까? ‘민심은 곧 천심이라 하였거늘, 지난해를 반추하는 입가엔 씁쓸한 미소만 번진다.

2020년 교수신문 선정 사자성어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의미를 조합해 만든 아시타비(我是他非)’라 한다. 신축년에는 부디 코로나도 물러가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무턱대고 남을 비난하는 내로남불도 사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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