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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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영화 ‘살인의 추억’ 끝부분에 주인공인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보리밭과 길가 사이에 있는 도랑을 고개 숙여 살핀다. 과거에 한 여자가 살해됐던 곳이다.

한 소녀가 이런 송강호를 보고 “어떤 아저씨도 그곳을 보고 갔다”라는 말을 한다.

송강호는 긴장한 채 어떻게 생겼더냐고 묻는다. 소녀는 “평범하게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송강호는 범인이 이곳을 찾았던 것으로 확신한다.

▲2003년 4월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범죄 스릴러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무거운 영화이면서도 중간 중간에는 익살스러움도 있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을 경운기가 지나가면서 없애버리거나 서울에서 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발령된 서태윤 형사(김상경)를 성추행범으로 오해해 주먹과 발을 날리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경운기가 족적을 없애는 것은 결국 진범을 잡지 못한다는 복선을 깐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박두만이 서태윤을 때린 거나 술집에서 형사들끼리 싸우는 것은 1980년대의 폭력 문화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살인 현장과 좀 떨어진 도심지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와 이들을 향한 최루탄과 곤봉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폭력이 몸에 밴 탓일까. 이 영화에서도 고문이 쉽게 이뤄진다.

“향숙이 이뻤다”를 반복하는 백강호(박노식). 그는 지능이 낮았다.

형사들도 그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티만 입힌 채 그를 모질게 고문한다. 지능이 낮은 그가 어떻게 증거를 남기지 않고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폭력은 영화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에서 이뤄졌다. 실제 범인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윤모씨(27)는 1997년 숨졌다.

고교를 졸업한 후 악기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1990년 2월 경찰에 붙잡혀 5일 동안 감금된 채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고 한다. 그는 결국 나중에 몸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돼 첫 수술에서 4개의 갈비뼈를 제거하기도 했다. 그의 형 윤동기씨(57)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피해를 봤던 사람들과 함께 최근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경찰의 강압적 조사를 견디지 못해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고, 아버지 무덤 근처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도 있다. 우리와 이 시대는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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