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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옛날 시골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다. 마당 안에 흙더미를 쌓아놓은 분위기부터 무슨 큰일을 벌일 것 같았다. 흙을 마당 가운데로 퍼 나른 뒤 잘게 썬 산도 짚을 섞은 다음 물을 부으며 동네 어른 여럿이 달려들어선 짓밟는다. 흙을 이긴다고 했다. 정강이를 걷어 올려 흙을 밟는 역동적인 작업이 한참 만에 끝나고 나면 이겨진 흙을 깔아 돌을 얹어 벽을 올렸다. 흙 위로 돌을 층층이 쌓아 흙벽이 됐다. 그 벽은 요즘 건축 못잖게 탄탄해 삼대를 더 살았다.

흙은 이렇게 집 짓는 데 큰 몫을 했지만, 그보다 더한 것으로 농경 민족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흙은 식량을 생산하는 단순한 경작지가 아니다. 그것은 태어난 곳이자 되돌아가야 할 숙명적 근원의 땅이다. 흙을 일구고 그 흙 속에 농작물을 재배하며 흙을 짓이겨 지은 집에서 삶을 산 사람들에게 은혜로운 존재였다. 가령 큰물에 쓸려 헐벗고 굶주려도 삶의 터전이 되고 다시 돌아가게 될 흙은 버리지 못했다.

우리 민족에게 흙이란 경제활동의 중심이면서, 생명이 달린 절박한 것이었다. 한 뙈기 땅을 얻는다는 것은 재물과 복을 함께 얻는 것이며, 그것을 잃는 것은 삶의 한 부분, 생명의 한쪽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무엇보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을 선호했다. 가깝고 비옥하고 넓고 좋은 땅에 대한 소망만큼 애착이 강했다.

흙은 또 고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대대로 조상의 피가 흐르고 땀이 밴 흙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는 토착적 인식이 고향이라는 줄기를 이룬다. 그래서 자신이 탯줄을 묻은 땅에서 떠날 수 없고, 언젠가는 돌아가 뼈를 묻을 곳이다. 흙은 물과 더불어 자연의 근본으로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게 섭리라는 황토관(黃土觀)이 여기서 발원한 것이다.

흙에 대한 이런 근원적 의식이 이무영의 <제1과 제1장>에 짙게 스며 있다.

“흙내였다. 그것이 흙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일찍이 그가 어렸을 때 듣던 아버지의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흙내를 맡아야 산다. 너도 공부하고 나선 나와 농사나 짓자.’…. 그러나 조소하던 그 말이 지금 그의 마음을 꾹 하니 사로잡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자, 흙을 만지자.‘ 흙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냐?”

흙냄새에 대한 그리움이 도시적 삶에 대한 반작용인 동시에 삶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관점으로 표현되고 있다. 단순한 동경이나 향수의 감정을 치고 나와, ’흙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냐?‘에 이르고 있다.

한때 읍내 집에 살며 작은 텃밭 농사를 한 적이 있다. 동산을 깎아지른 자드락이라 땅심이 매우 얕았다. 처음 해 본 서툰 농사라 소출도 적었다. 몇 년 지나면서 자신의 무지를 반성했다. 텃밭을 갈아엎으며 밑거름을 해준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고추가 열리고 쪽파와 배추와 치커리가 싱싱하고 방울토마토가 다닥다닥 달렸다. 흙은 모성이었다.

또 신기한 게 있었다. 어떤 인연에 한란 분을 간직해 퍽 애지중지했다. 한데 30년을 영양제 몇 번 주고 나선 물만 주었다. 겉돌았음에도 난이 듬성듬성 꽃을 보여주었다. 영양제를 뿌렸으면 더 많은 개화를 보았을 것을. 흙의 노고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을까를 돌아보면서 가슴 쓸어내렸다.

흙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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