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을 정리한다, 침대 머리맡, 컴퓨터 책상, 외출용 가방, 반짇고리의. 돋보기 찾아다니는 게 불편해 사들이다 보니 무려 네 개가 됐다. 소중한 나의 분신이었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 안경집에 넣어 서랍 안으로 밀어 보관한다.
언제부터인가 안개 낀 듯 사물이 흐려 보이고 컴퓨터에 집중해 작업하다 보면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눈 영양제며 온열 안대를 사용해도 별반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다. 황반변성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이웃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안과를 찾았다.
백내장이란다. 수정체에 단백질이 쌓여 시야가 흐려지는 노인성 질환이다. 백내장이라는 진단에 그동안 눈 관리를 소홀히 했나 하는 자책감에 무심결 풀죽은 표정이 지어진다. 언제 내 기분을 읽었는지, 요즘은 주변 환경의 변화로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이 많은 30~40대에서도 흔히 생긴다는 의사의 말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수술을 결정하고 나니 기다렸던 듯 검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단초점과 다초점 렌즈 선택에 잠시 고민도 했지만, 보험처리가 가능하다 하여 다초점 렌즈로 정한다. 수술은 생각보다 간단하였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불편함은 삶의 질마저 떨어뜨린다.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눈에 담고 싶지만 감으로만 느낄 때가 있었다. 눈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의 고마움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교묘하게 교차한다. 짬이 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고, 어느 때는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눈을 혹사한 적도 다반사였다.
건강할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침침한 증상이 나타나서야 영양제며 식이 요법을 넘나들며 서둘렀던 것 같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당근 주스를 마셔도 이미 눈의 노화가 진행돼 별 효과가 없지 않았나 싶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게 맞다. 병원 가보면 온 국민이 환자 같다. 수술 당일 보호자로 같이 갔던 딸이 대기 중인 환자들은 보고, 내일부터 당장 눈 영양제를 복용하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야말로 병원은 환자들로 북새통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눈이 피로한데다 집중도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두통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았다. 건강은 한 번 잃게 되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지만, 안과 수술로 밝은 눈을 되찾게 돼 그나마 다행이다.
눈은 생명의 빛이기에 지키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야외 운동으로 들녘의 초록 풍경을 담으며 휴식을 주려 한다. 초록빛이 눈 건강에 좋아서만은 아니다. 적당한 바깥 활동으로 몸의 긴장도 풀고, 햇볕을 쬐며 면역력을 높이고 싶어 서이다. 면역력이 곧 종합 백신이 되기 때문이다.
봄을 맞으려 월랑봉 둘레길, 바람의 길을 걷고 있다. 그곳에는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언 땅을 비집은 봄까치풀꽃의 반가운 봄 마중이 있다. 왁자지껄 새순이 움트는 소리가 있다.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추웠던 겨울이었지만, 움츠렸던 마음에 봄의 기운을 담으니 상쾌하다. 건강한 느낌이 좋고, 맑은 시야가 좋다. 오랜 시간 같이했던 돋보기를 벗으며….
고여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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