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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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2월 하순, 연사흘 비바람이 몰아쳤다. 미상불 이맘때면 날씨가 변덕으로 슬며시 심보를 부리니 얄궂다. 한참 서성이던 계절이 이제 3월의 교차로를 건너며 괜히 몸살기라도 도졌던 걸까. 지난겨울은 여러 날 폭설로 오금이 저렸다. 춥고 음습한 고난의 터널을 지나느라 버둥거렸다. 겨울도 한가지였을 것 아닌가. 오는 봄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막상 바통을 넘기려니 시새움이 났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연동의 한 아파트는 너른 부지에 조경을 잘 곁들여 나무들 공동집합이 숲으로 울울하다. 관목과 교목, 상록수와 낙엽수와 크고 작은 돌들의 조합이 단독주택 같은 푸근함과 여유로움을 안겨 준다. 숲 새로 오솔길을 낸 것은 사시장철 이곳을 흐르는 시정(詩情)이다. 실제, 동과 동 사이에 공간을 내어 쉼터 둥근 돌들에 김춘수의 <꽃> 등 명시를 새겨 놓았다. 서정을 풀어 놓은 아파트의 비주얼이 놀랍다. 사람 사는 집까지 문화가 고급스러운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한데 겨우내 꽃을 볼 수 없어 읍내서 올라온 사람에겐 아쉬웠다. 겨울엔 꽃이 없다지만, 꽃이 왜 없는가. 눈 속에 경이로운 수선화, 사방으로 퍼지는 향기에 추위도 잊은 채 다가앉는 천리향….

그런데 2월 하순 어느 날, 아파트 숲을 지나다 서너 굽이 휘도는 오솔길 막다른 구석에 눈길이 딱 멈췄다. 홍매가 망울을 터트렸지 않은가. 꿈만 같았다. 그리던 정인과의 해후 같은 소소한 일상 속의 놀라움, 색다른 발견이었다.

겨울 끝자락, 삭막한 아파트 뜨락에 꽃을 피운 오직 한 그루 꽃나무. 꽃은 혼자 수줍어 새치름히 피었나. 젖살 오른 볼이 발그레하다. 아기 눈높이 홍매의 여린 꽃잎 위로 찬비가 내리고 있다. 비는 만만찮게 바람을 업고 왔다는 듯 세차고, 시나브로 흔들리는 숲, 향기 흩어져 코끝 매캐한데 어른거리는 꽃그늘. 겨우내 목말랐던 갈증을 축이는지 홍매는 시종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찬비 속에 홍매는 개화로 한 우주를 열었다. 그것은 꽃이 간여할 만큼 외연을 넓히며 보는 이의 정서를 고양(高揚)해 사유의 골을 깊게 할 것이고, 그들의 일상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이곳에 꽃이 있다는 놀라움, 비바람 속에 피어나 추임새에 달뜬 매무새. 홍매가 피었다는 이 개화 사실은 주민들의 차가운 마음의 구들장 아랫목을 지피는 불씨로 살아나리라.

눈앞에 와 있는 봄의 자락을 밟고 오가는 발걸음들이 가볍다. 4월이면 이 도심 어느 둘레에서 하얀 목련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음계를 타고 목월 시 <4월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싶다.

이제 코로나19도 백신에 쫓겨나 교차로를 서성거리고 있다. 종주먹 올려붙이지 않아도 혼쭐났을 것이다. 그만 세상을 흔들어 놓았으니 저도 제풀에 꺾일 때가 됐다. 너덜거리는 남루를 걸치고 종종걸음치리라.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겠지만, 서두르면 무리가 따른다. 이 얼마 만인가. 하던 일에 초심으로 다가가야지. 보고 싶은 이도 만나야 하고 가고 싶던 곳에도 발을 놓아야지. 들뜨진 말고 차분히, 거리두기로 손 놓았던 이웃들과도 손 맞잡아야지. 먼저 봄의 신명으로 달뜬 저 푸른 들판을 원 없이 거닐어야지. 하루해가 저물도록 두 발로 지근지근 밟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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