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보상금은 권리…평화기금 기부는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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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편집부국장

“4·3 영령의 피와 눈물이 섞인 것인 만큼, 저에게 지급되는 (위자료·보상금) 전액을 인간의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금을 만들기 위해 기부하겠습니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이 지난달 27일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이렇게 서약했다. 전날 국회에서 통과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제단에 올리면서 다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족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뜻과 함께 평화의 마중물을 기대했다.

이 소식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4·3정신의 승화라는 희망을 보았다.

개별 배·보상 성격의 위자료는 당연히 유족들이 누려야 할 권리이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해야 했고, 온 가족이 대대로 숨죽여 지내야 했던 통한의 73년 세월. 얼마의 돈을 받는다고 이 상처가 모두 아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당보난 이런 날도 왐구나’라는 유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소한의 치유는 될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이제 유족 스스로 보상금으로 평화기금을 만든다고 하니 기대감이 커진다.

기자도 국가의 보상 근거가 포함된 4·3특별법 개정안 발의 당시 상황부터 ‘보상금 10% 이상 기부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 생각을 품고 있었다.

기자가 지난 3일 국회에서 만난 오영훈 의원실 관계자와 한 유족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4·3 영령 후손으로서의 도리, 보상금 재원이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 법안 통과까지 여러 갈래의 시각이 있었고, 유족뿐만 아니라 4·3 해결을 바라는 제주도민과 국민의 성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4·3특별법 시행 이후 공동체적 보상 성격의 4·3평화공원 조성, 정부와 제주도의 출연으로 출범한 4·3평화재단의 각종 지원 사업도 있었다.

민간 단체인 4·3유족회가 내년 정부 예산으로 위자료 지급이 개시되면 평화 기금 조성에 나서는 만큼 기부 행렬에는 모두가 참여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현재까지 정부에 인정받은 희생자는 1만4533명, 유족은 8만452명 등 총 9만4985명이다. 4·3특별법에 근거해 받은 위자료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금이든 예외가 없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야 후손이 없어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희생자 3000여 명의 위자료도 보완 입법 과정에서 기금 출연 동력을 찾을 수 있다.

보상금의 10%만 해도 행안부가 확정하지 않았지만 추정치 1조3000억원 중 1300억원에 달한다. 이 정도면 4·3의 화해·상생·평화정신의 전국화를 넘어 세계화·미래화, 제주 발전을 위해 유용하게 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비슷한 사례도 있다.

2013년 발족한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자 인권과 평화 증진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은 것이다. 재단 설립금은 유족 93명이 받은 보상금의 5%(6억2000만원)와 지연이자(4억원) 등이다. 60여 년 동안 ‘빨갱이 유족’이란 누명을 쓰고서 살아왔지만 마침내 고고의 소리를 내겠다는 의지이다.

4·3 유족들이 평화기금을 조성해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면 규모나 내용 면에서 모범적인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을 수 있다. 과거의 피해자들이 주체적으로 새 역사를 써내려가며 따뜻한 봄을 만드는 것이다. 제주를 평화와 인권의 수도로 일구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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