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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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역린(逆鱗)’은 용의 턱 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용의 급소이며 절대로 자극해선 안 될 곳이다.

상상의 존재인 용은 길들이면 등 뒤로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어쩌다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해를 입는다. 아무리 고분고분하고 무던한 용이라고 해도 그 등 위에 올라타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다가가야 한다. 자칫 들뜬 마음에 함부로 행동하다간 역린에 손을 대기 십상이다. 그땐 용이 돌변하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용은 왕을 상징한다. 한비자는 세난(說難)편에서 신하가 군주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말하면서 역린을 강조했다. 총애를 받을 때는 어떤 행동도 눈에 들어 하지만, 미움을 살 때는 예전에 칭찬받은 행동이라도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군주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의 심기를 잘 살피고 조심스레 대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화성 높은 이슈는 단연 부동산이다. 여기에 잘못 찍히면 어느 정권이나 개인도 아량 없는 무차별적인 공세에 시달린다.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사하지 못한 이들도 상당하다. 청문회에선 관련 의혹을 깔끔하게 털어내지 못하면 낙마를 각오해야 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빚내서 투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일부가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공분이 일고 있다. 부동산에 예민한 서민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엄중 대응을 천명한 것도 이래서다. 그동안 부동산 이슈는 정권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LH발이 자칫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오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선 부동산과 주거 정책이 일자리나 복지 정책, 코로나 대응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국민의힘이 희대의 투기판이라며 공세를 집중하는 것도 민심을 자극하는 데 이만한 호재가 없다.

군주 없는 시대에서 역린은 민심의 분노다. 민심은 물과 같다. 잔잔하다가도 요동을 친다.

순자(荀子)왕제(王制)’편에서 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했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부동산이 거센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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