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들판
수확의 들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권일(농업인·수필가)

한 해 농사가 끝났다. 농부의 발걸음에 비례하여 뿌린 만큼 거둔다지만, 수확을 앞둔 가슴은 성적표 받아 든 수험생처럼 콩닥콩닥거린다.

예상은 했지만, 노지감귤 가격은 합격점에 미달이었다. 잦은 비 날씨로 인해 당도가 예전 같지 못했고, 코로나 재앙으로 구매력을 잃은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타이벡 감귤도, 오십보백보였다. 한여름 땡볕 아래 토양피복을 해서, 빗물흡수 막아 당도 높이고 반사광 이용해 골고루 잘 익도록 애면글면했건만, 역부족이었는지 당도와 가격이 시원치 않았다. 노지감귤 농민들의 길고 깊은 한숨이, 한라산보다 높았고 앞바다보다 깊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레드향 · 천혜향 · 한라봉등 만감류 가격이 괜찮았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미증유의 폭등세가 이어졌다. 농협과 약정한 출하량에 더해 단골들의 택배 주문이 밀려들어, 부르는 게 값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미리 포전거래(圃田去來)를 했던 농가들이, 땅을 치며 후회를 했겠는가.

각설(却說).

한 달여의 수확이 끝나, 빈 둥지 같은 농장에 봄을 잉태하는 비가 잦아졌다. 올 한 해 농사를 준비하라는 하늘의 전령(傳令)이다. 할 일이 태산이다. 서둘러야 한다.

노지에는 타이벡이 하얗게 뒤덮여 있고, 비닐하우스에는 감귤 매달았던 끈들이 치렁치렁 늘어뜨려져 있다. 하루라도 빨리 타이벡을 걷어주어야, 4개월여 타는 목마름에 시달렸던 나무에 수분을 보충해 기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비닐끈도 신속하게 제거해주지 않으면, 비닐이 삭아 비산먼지가 되어 호흡기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전정작업은 전문가들에게 맡긴다쳐도, 잘라낸 가지들을 모아 파쇄하는 작업이 뒤치닥거리로 산더미처럼 쌓인다. 퇴비와 비료 살포로, 고갈된 땅심도 회복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농사란게 원래 남 눈치 볼 것 없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대신, ‘일출이작(日出而作)’이라는 근면·성실의 일상만큼은 지켜야 한다.

꽃망울이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하는 춘삼월이 왔건만, 코로나의 그늘은 여전하다. 백신으로 집단방역이 이루어져, 하루 빨리 마스크 벗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나저나, 요즘 코로나보다 더 하수상한 일들이 민주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솥발처럼 정립(鼎立)되어야 할 삼권분립의 균형과 견제가 무너지고, 국회와 법원이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는 행정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4월 보궐선거에 이어지는 대선을 겨냥해,나라곳간을 열어 쌈짓돈처럼 헤프게 푸는 매표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지. 코로나를 빙자해 국가권력이 빅브라더의 독재유혹에 빠져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등등. 정도(正道)를 이탈한 나라의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疑懼心)들이, 제발 시골 농부 혼자만의 기우(杞憂)였으면 좋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