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습으로
어떤 모습으로
  • 제주일보
  • 승인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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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켠다. 밤새 새로운 뉴스들로 꽉꽉 차 있다. 타이틀들을 쭉 훑다 습관처럼 자극적인 제목에 낚여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내용이 없다. 떨떠름한 입맛을 다신 후 다른 뉴스거리를 기웃거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터치로 접하는 숱한 기사들,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망각의 강으로 흘러간다.

한데 요 며칠 언제가 읽었던 어떤 이의 삶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43년을 한 직업에 종사한 어느 70대 때밀이 장인(匠人)의 이야기. 기사를 쓴 기자는 목욕관리사, 세신사라는 고상한 말도 있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한 단어는 ‘때밀이’라 강조한다. 아울러 이 말에 밴 편견과 괄시의 시선에 어깃장을 놓고 싶다며 독자의 흥미를 자아냈다.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가난한 때밀이 아저씨는 뙤약볕이 아닌 그늘에서 일하고 싶어 친구들과 서울에 상경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다 군대를 갔다 온 뒤 취업하게 된 어느 목욕탕. 그는 말한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도 이 직업이 평생 밥벌이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43년이란 세월이 말해주듯 그 일은 그에게 천직이 되었다.

장인이 된 특별함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기술이란 게 별것 아니라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열심히, 정성껏, 성의껏 공평한 20분’이라 한다. 한 직종에 오래 일했다고 장인이라 칭하지 않는다. 고객을 향한 그만의 철학,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가갔느냐가 중요했기에 가능하였으리라.

그의 첫 번째 손님은 지금까지도 인연을 맺고 있는 김 사장이라는 분이란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 주연보다 조연이 눈길을 끌 때가 있다. 이분이 나에게 그러했다. 초보의 어설픈 손놀림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주며 그에 대한 비용을 내밀었다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하나의 잔상과 마주했다.

삶에서 ‘첫’이 붙는 것들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한복 가게에서 옷을 짓던 나의 첫 직장.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사회 초년생에게 사회가 녹록지 않음을 깨우쳐 준 게 나의 첫 사장님이었다. 햇병아리가 바로 닭이 되길 원했던 분. 무슨 일이든 영원한 초보는 없는데 손이 굼뜨다는 이유로 첫 월급과 함께 나를 다른 가게로 보냈다. 매몰차게 등 돌린 그 비정함이 오래도록 가슴 시리게 했다.

삶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한 사람을 주눅 들게도, 꿈을 꾸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이 내게 더 유리한가에 목매는 게 사람의 속성이지만 남을 배려한 선한 영향력은 첫걸음을 걷는 이에겐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된다.

햇살이 조금씩 살찌기 시작하는 봄으로 접어들었다. 누군가는 오늘 이 계절처럼 산뜻한 새 출발의 들머리에 섰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낯선 초보의 세계에 들어선 이가 나를 스칠지 모른다.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잠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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