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증대와 도유지
소득 증대와 도유지
  • 제주일보
  • 승인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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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찬 수필가

도유지를 일구어 경작하고 있는 밭두렁에 함부로 경작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박혀있다. 이를 보는 농민의 가슴속에는 지난 세월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게 개인의 소유지가 아니란 것도 언젠가는 손을 놓아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선진국이 된 근래에도 소득 증대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지만, 예전에 소득 증대와는 썩 다른 느낌이다. 당시에는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노를 젓는 소득 증대라면 요즘은 평온한 바다에 느긋이 여유를 갖고 노 젓는 느낌이다.

어려운 시절을 같이한 사람들은 진정한 소득 증대가 무엇인지 안다. 새마을정신의 핵심은 땀 흘려 일하고 소득 증대에 힘써서 부자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다. 당시의 해녀들은 해빙기가 되면 동해 서해 남해로 원정물질 하러 떠났지만, 젊은이는 땀 흘려 일할 곳이 별로 없었다. 온종일 밭갈이할 경작지도 마을 전체에 몇 필지 없었다.

한 뙈기 땅이라도 놀리지 말고 호박이라도 심어야 한다는 새마을운동은 개인 땅이 없는 젊은이가 도유지(당시에는 군유지)를 개간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장비가 없던 시절 낫으로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삽으로 일구고 괭이로 고르고 자갈을 치웠다. 주위에 돌을 모아 담을 쌓았다. 지금은 평평하고 잘 가꿔진 밭이지만, 중장비가 나온 후 거금을 주고 돌을 캐고 흙을 넣어서 만든 것이다.

1990년대 초 마을 이장을 했다. 복사기도 없던 시절에 지적도 위에 선이 희미하게 보이는 반지를 붙이고 사본을 그렸다. 당시 개개인의 개간한 자리를 표시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삼십 명이 넘는 주민이 점유한 자료를 갖고 군수님을 만났다. 당시 송00 군수님이셨는데 지역 실정을 말씀드리고 임대차 체결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임차하다 보면 불하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도 함께였다.

자료를 보시더니 “행정에서도 무단으로 개간하여 농사짓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가난한 농민이라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임차료를 낸다고 해서 불하받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공개 입찰 경쟁인데 힘없는 농민이 취득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행정에서 필요로 할 때까지 농사짓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돌아섰다.

밭에 박힌 말뚝을 보면서 이제부터는 임차하고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별다른 수가 없다. 하기야 젊은 시절에 힘겹게 일구었지만, 덕분에 소득에 적잖은 도움도 받았다고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관계 공무원 왈 “임대차 체결 이전에 무단경작을 했다면 5년 치 임차료를 과태료로 한꺼번에 내야 합니다”라고 한다. 거액이다. 새마을운동 당시에 구관은 한 뙈기 땅이라도 놀리지 말고 소득과 연결이 되면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었는데 신관은 다르다.

과태료 명분으로 5년 치 선납 후에 임차계약을 하라고 하니 무리다. 차후에 선순위 매각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해보겠지만 아무런 혜택도 없는데 굳이 임차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럭저럭 농사하다 그만하라면 그때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어 돌아섰다. 주변에 같은 입장인 농민 50여 명이 있다. 필요할 때까지 말뚝 박지 말고 편히 경작할 수 있도록 행정에서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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