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뒤에는 죽음이 필연적이다
삶 뒤에는 죽음이 필연적이다
  • 제주일보
  • 승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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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식 수필가

이 세상에는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옳은 사람과 자신을 옳다고 여기는 죄인이 살고 있다. 우리가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운다 해도 직접 경험해봐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히 고난의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어떻든 그런 고난이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긴 시간 터널을 통과하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닥친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고통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재산은 나의 영원한 소유물이 아니다. 얼마동안 머무르다가 벗어 놓아야할 일시적인 우리 몸의 옷으로서 끝 날이 오면 흙이 되어야할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인 것이다.

불교계의 유명한 법정스님(1932~ 2010)께서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이다.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이고 아름다움이다. 나는 내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은 것이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차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면서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만 있으면 다 나눌 것은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자원봉사라는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러워 진다는 것이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사람은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죽음이란 도피하거나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연 발생적 현상이며 모든 생명체가 거쳐야 하는 마지막 단계로 그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우린 이 세상의 여행객임을 인식해야 한다. 죽음이 잠시 동안 볼 수만 없을 뿐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죽음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생각 때문에 애통해 하며 슬펴 하는 것이다. 생명의 연장선상에서 앞과 뒤를 위치만 바꾸어 놓으면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일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을 둘로 가르지 말고 결국 삶이 죽음에 맞닿아 있는 순간으로 본다면 고인은 영원한 삶의 원천에 복귀하는 것과 같다. 삶 뒤에는 죽음이 필연적으로 오는 것으로서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이치라고 볼 수 있다.

꿈은 마음대로 꾸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가라. 되고 싶은 것은 되도록 노력하라. 왜냐하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고 기회도 한 번뿐이다. 사람은 잘 죽기 위해서 바르게 잘 살도록 노력해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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