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세습과 내면화된 규율 권력
폭력의 세습과 내면화된 규율 권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최근 연예인 학교폭력과 죽음을 불러온 아동학대 논란이 사회의 화두이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길 수도 있는 일 혹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면서 생길 수도 있다고 정당화되었던 일들이 지금은 사회적 분노의 한 가운데 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폭력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인식의 확대를 엿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상상 이상의 폭력 양상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70~80년대 군사정권시절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의 중년 친구들이 모이면 으레 나누는 옛 기억 중의 하나는 학창시절과 군대에서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당하였던 ‘매질’ 경험담이다. 한 번은 친구로부터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시퍼렇게 멍이 들 때까지 엉덩이를 맞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 정도의 매질이라면 어린 학생이 죽거나 신체적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매질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지점에서 누구나 드는 생각 하나가 있다. 맞다! 그 선생님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매도 맞아본 사람이 잘 때린다’는 속설처럼 학창시절과 군대 경험동안 당하였던 폭력의 경험은 몸에 체화되어 그 정도의 매질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폭력은 세대를 넘어 세습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폭력의 확산은 일제 식민경험 및 근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물리적 수단이나 힘을 동원하여 상대를 사납게 제압하는 폭력은 통제의 신호로, 식민통치와 근대 정치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폭력은 구조적이며, 집단적이고 규율적이다. 폭력은 개인적이라 할지라도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져 오면서 관습처럼 굳어진 경우가 많다. 폭력이 용인되는 사회구조와 문화, 규율위배라는 명분을 가지고 피해자의 동의를 이끌어낸다. 사랑의 매라는 이유, 학습효과라는 이유, 조직의 세 확대, 조직의 규율 수립이라는 이유 등으로 피해자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하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오늘날에는 폭력의 유형과 양상이 상상 이상을 초월하는 경우들이 많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스포츠폭력, 데이트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아동학대 등 유형은 다양해지면서 신체적 폭력에서 나타나는 상상 이상의 가학성, 그리고 신체적 폭력은 처벌을 받기 때문에 우회적 통로를 통하여 신체적 폭력 대신 언어폭력, 따돌림, 위화감 조성, 협박 및 공갈, 신체적 폭력 예고, 검열 등 기호적 신호를 통하여 폭력 욕구를 해소하는 양상들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격투술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폭력에 기반 한 식민정치와 독재정치를 끝내기 위하여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많은 희생을 치러왔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나 우리 안에서의 폭력은 여전히 내면의 규율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0년에 출간된 『우리 안의 파시즘(임지현 외, 삼인)』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우리 의식과 일상적 삶의 심층에 내면화된 규율권력, 일상적 파시즘의 극복이야말로 정치적·제도적 파시즘을 타파하는 요체이다.” 내면화된 규율 권력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이다. 폭력은 민주사회의 근본인 인권과 의사소통의 문제와 관련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자각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