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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반환점을 돌아선 삶에선 시곗바늘마저 쏜살같이 돈다. 엊그제인 것 같은 일도 곰곰 생각해 보면 몇 달 전 혹은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었음을 감지하고선 적잖이 놀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이다. 마치 실바람에도 하늘거리는 가오리연의 기다란 꼬리처럼, ‘하르방이라는 반갑지 않은 수식어가 그림자마냥 뒤를 따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될 듯도 하지만, 그래도 잠재하는 서러움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촌음(寸陰)도 쉬지 않고 어김없이 흐르는 세월을 어찌하랴. 본시 나약한 존재임을 감내하며 순리에 순응할 밖에. 왠지 자신이 초라해질 때, 삶의 무게에 눌려 자꾸 물음표가 생길 때, 불현듯 허전함이 밀물처럼 몰려들 때, 그저 삶이 팍팍하다고만 여겨질 때면 주저 없이 하소연을 하며 막걸리 잔이라도 기울일 누군가가 절실히 생각난다. 우리는 그를 친구라 쓰고 이라 읽는다.

친구는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요, ‘은 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니 결국 내 마음 속 깊숙이 자리해 결코 잊히지 않는 대상을 일컬음이다. 혹자는 자연에서 참된 벗을 찾기도 하는데, ··소나무·대나무·(水石松竹月)5(五友)로 삼은 고산(孤山) 윤선도 선생이 그러하다.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던 현인(賢人) 공자께서도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 하여 멀리 있는 벗이 찾아오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삼지 않았던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사회와 단절한 채 홀로 살아가기가 수월치 않은 것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이다.

바야흐로 벚꽃이 활짝 웃을 준비를 하는 개학과 입학의 시기이다. 새 학년 새 얼굴을 맞이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하리라. 평생을 동고동락할 만한 좋은 벗을 사귀어야 할 텐데. 친구 따라 강남을 가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그런 벗을.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생필품이 되어버린 이즈음 모처럼 짬을 내어 만난 벗들과의 자리에서도 다섯을 헤아려야 하는 현실. 음식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식당 벽에 걸린 시계에 자꾸만 시선이 머무는 안타까움.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막강한 위력 앞에 맥없이 주저앉아 버린 우리네 삶의 하루하루가 빛을 잃어가고 있다. 과연 언제쯤 이 짙은 장막이 걷힐 것인지.

개화를 재촉하는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그렇지. 이 답답하고 허한 마음을 순식간에 치료해 줄 보약 같은 친구가 있지. 재빨리 휴대전화를 든다, 노년의 행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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