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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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연사흘 강풍이더니 오늘은 봄의 입김으로 따습다. 몸이 안정을 바라므로 걷기운동을 내려놓아 여러 달째다. 내외가 둘레를 거닐자 했다. 볕에 이끌려 길 건너 동네 소공원에 갔다. 볕도 쬐고 바람도 쐴 요량이다. 입구에서 몇 그루 토종 동백이 어깨 겯고서 낯선 발길을 반긴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피어난 꽃송이들이 유난히 선연해, 비바람에 숨었다 수줍은 듯 밖으로 내민 민낯이 곱다.

한라산 쪽으로 길이 탁 트였고, 나머지 삼면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에워싸여 안온한 곳.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미칠까. 제주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이 도시 한복판에 이만한 시민의 쉼터가 자리 잡고 있으니 놀랍다. 정자 셋, 여러 개의 원목 의자와 벤치 그리고 운동기구들이며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그네도 두루 갖추었다.

걷기운동 하는 주민들을 위해 마당에 우레탄을 깔았다. 탄력으로 발바닥이 받는 충격을 흡수해 줄 것이다. 이런 배려가 자그마치 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도록 환경을 만들어 거드는 것처럼 피부에 와 닿는 복지는 없다.

아파트 단지에서 한길로 통하는 목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19로 딴 세상 사는 것 같은 시국이라 눈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얼굴을 살피게 된다. 마스크를 썼나 안 썼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무의식이 그쪽에 가 있다. 옆에 앉은 아내가 중얼대고 있다. “저 사람, 젊은이가 마스크를 안 썼네. 아니 저럴 수가.” 우리와 반대편을 걷고 있었으나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들렸을까. 아파트 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공연히 계면쩍어 입맛을 다신다.

두 시간 가까이 소공원을 지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 젊은이 말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하긴 거리에도, 시장에도, 버스에도, 심지어 가족 행사에도 마스크를 쓴다. 한 중년 여인이 우리 앞을 지나다, 얼른 마스크를 꺼내 쳐다보며 쑥스러워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단정히 쓰고 앉은 모습을 보자, 아차 한 걸까. 웃음이 싱그럽다.

우리 국민, 잘 따르고 잘 뭉치잖는가. 한일월드컵 때의 국민적 함성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코로나 초기에 선제 대응을 했듯, 이 사태의 마무리도 산뜻해 세계의 이목이 쏠리리라.

목줄 띄워 반려견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여남은을 헤아린다. 남자 두엇 빼고 전부 여자분들이다. 반려견은 아무래도 여성적 취향에 많이 기운 것 같다. 뒷바라지가 만만찮을 것인데 용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도 능력이다. 녀석들이 돌돌 굴러가다 다리 올리고 쉬를 하니 볼썽사납다.

팔순은 중씰한 노인이 우리 앞을 몇 차례 지나고 있다. 보폭이 넓고 시종 저벅저벅 변함없는 속도로 앞만 보며 걷는다. 연세를 잊은 듯 꼿꼿한 등에 요즘 흔한 복부비만도 용납지 않은, 잘 관리한 체형이다. 이 소공원에서 몇십 년 줄곧 걷기운동을 해 온 분으로 보인다. 어쩌면 저렇게 반듯한 걸음걸이일까. 신발 끄는 소리도 없이, 팔 한 번 흩어 놓는 일 없이. 걸으며 깊은 상념에 잠기면서 평상심을 유지하는가. 지금 노인은 무념무상(無念無想)에 잠겨 있을는지도 모른다.

수평으로 날개를 접으며 비둘기가 무리 지어 내려앉는다. 햇볕 속에 종종대며 맨바닥을 쪼아댄다.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연이 인간 전유물이 아닌 걸 아는 듯이. 자주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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