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도화선 된 일반재판 판결문 73년 만에 세상으로
4.3도화선 된 일반재판 판결문 73년 만에 세상으로
  • 좌동철 기자
  • 승인 20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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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도민연대, 국가기록원 통해 24명의 판결문 확보...내달 재심청구키로
1947년 3.1절 발포사건, 미군정 양곡 강제 공출 등 항의 도민들 기소돼
1948년 11월 계엄령 공포 전 1년 6개월간 제주지법서 1800여 명 일반재판받아
1947년 8월 미군정의 보리 공출에 반대했다가 징역 10개월 받은 강석주씨 판결문. 중앙청 식량행정처는 1947년 9월 제주의 보리 수매실적은 53%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하다고 발표했다. 그해 12월 제주의 추곡수매 실적은 11%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1947년 8월 미군정의 보리 공출에 반대했다가 징역 10개월 받은 강석주씨 판결문. 중앙청 식량행정처는 1947년 9월 제주의 보리 수매실적은 53%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하다고 발표했다. 그해 12월 제주의 추곡수매 실적은 11%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제주4·3사건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일반재판 판결문이 73년 만에 나오면서 4·3의 진상 규명과 수형인들의 피해 회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8일 본지 취재 결과, 제주4·3도민연대(대표 양동윤)는 4·3당시 일반재판을 받은 1800여 명의 형사범 피고인 중 24명의 판결문을 국가기록원을 통해 확보했다.

이 단체와 유족 24명은 다음달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일반재판은 4·3의 도화선의 된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3·10도민 총파업에 연루됐거나 미군정의 양곡(쌀·보리) 강제 공출에 반발한 도민들이 기소돼 제주지법에서 1년 6개월에 걸쳐 받은 판결이다.

이들은 미군정청 포고령 2호(무허가 집회·시위)와 군정법령 19호(공무집행방해)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일반재판 판결문을 보면 고(故) 강석주씨(당시 34세)와 마을 청년들은 1947년 8월 안덕면 동광리에 보리를 공출하러 온 옛 남제주군 공무원 3명을 상대로 집단 항의한 혐의로 그해 10월 3일 제주지법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서 강씨는 “보리 흉작으로 내줄 양곡이 없었다. 당국에 청원을 올린다”고 호소했지만 징역형이 선고됐다. 대흉년으로 굶주렸던 동광리 주민 50여 명은 보리 공출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군정은 보고서에 이들을 ‘mob(폭도)’라고 기록했다.

판결문을 보면 강씨와 함께 기소된 한 주민은 벌금형(3000원)을 선고받자, 밭을 팔아서 벌금을 냈다. 당시 공무원 월급은 700~1000원이었다.

4·3도민연대는 2017년부터 4·3당시 일반재판을 받은 피고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 1800여 명의 명단과 본적지·형량 등 재판 현황 목록을 작성했다. 이어 지난 1월 국가기록원에서 24명의 판결문 사본을 입수했다.

양동윤 대표는 “군사재판 수형인들은 판결문이 없어서 무죄를 입증할 재심재판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반면 일반재판은 판결문이 남아있어서 재심청구에 필요한 증거자료가 되면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절차에 큰 어려움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47년 8월 미군정의 보리 공출에 반대했다가 징역 10개월 받은 강석주씨 판결문. 강씨가 옛 남제주군 공무원에게 청원을 호소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947년 8월 미군정의 보리 공출에 반대했다가 징역 10개월 받은 강석주씨 판결문. 강씨가 옛 남제주군 공무원에게 청원을 호소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편 지난달 26일 국회를 통과한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일괄 직권 재심과 함께 일반재판 수형인도 이에 준하는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명예회복 조치가 이뤄졌다.

한편 제주4·3사건의 도화선이 된 1947년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은 제주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도민 3만여 명은 기념식이 끝난 후 관덕정까지 ‘통일 조국 독립 전취’, ‘삼상회의 지지’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던 중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해 5월 3·1사건과 관련, 재판에 회부된 328명 중 104명은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를, 56명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아울러 미군정은 대흉년에도 양곡의 매점매석을 차단하고, 식량의 유통을 통제하기 위해 1947년 6월 옛 북제주군에 1만800석, 옛 남제주군에 6200석의 보리(하곡) 수매량을 할당했다.

이에 한림읍 명월리와 안덕면 동광리 등에서 보리 강제 공출을 거부하는 시위와 충돌이 발생했다.

4·3이 한창이던 1948년 11월 17일 제주지역은 계엄령이 공포돼 이후에 기소된 도민들은 일반재판이 아닌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군사재판 수형인 2530명은 1999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 명부가 발견됐다. 제주지법은 2년간의 재심재판을 통해 지난 16일 행방불명 수형인 33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4.3일반재판 판결문을 통해 제주4.3사건의 원인과 진상 규명에 나선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
4.3일반재판 판결문을 통해 제주4.3사건의 원인과 진상 규명에 나선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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