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필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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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21세기는 제4의 물결, 변화와 소통 그리고 융합의 물결의 시대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은 그 시대에 맞는 인물을 만들어 낸다. 공맹이나 석가모니, 예수도 그랬고 세종대왕이나 충무공 이순신도 성철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이태석 신부 역시 모두 한 시대가 만들어낸 레전드들이다. 자고로 큰 바위 얼굴은 자신이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세상의 울림으로 탄생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기실 최선을 다 했을 뿐 평가는 세상에 달렸다는 뜻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학교만 다녀오면 가까운 동네 만화가게가 내 놀이터였다. 나를 찾으려면 만화가게로 오기만 하면 독서삼매에 빠져있는 나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한두 번 불러서는 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쯤에 이르러 나는 그 만화가게에서 우연치 않게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장발장)’이라는 신기한 소설책을 만났다. 무슨 뱃장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책을 주인 몰래 슬그머니 책가방에 담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밤새도록 읽었다. 그런데 주인공 쟝발장이 성당에서 촛대를 훔치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양심에 가책이 됐던지 바로 다음 날 만화가게로 가서 그 책을 본래 있던 자리에 꽂아놓으려는 순간 아차 이게 왠 일인가? 그만 주인이 내 등 뒤에서 어깨를 툭 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주인을 돌아보았다. 주인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야 임마! 그 책은 네 것이야, 내가 너에게 선물로 주려고 거기에 꽂아 놓았던 거야! 네가 하두 책을 좋아해서 우리 가게 만화책은 죄다 읽었쟎니. 어떤 책은 두 번씩도 읽는 네 모습을 보면서 이제 너는 만화에서 소설로 바꿔야 될 것 같아 내가 이 책을 네게 선물로 주려고 사온 게야!” 나는 정말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하였다. 그 후로 그 집에는 나를 위한 소설책들이 여러 권씩 들어왔으며 내 눈을 만족시켜 주었다.

5학년 중반쯤에 이르러서 나는 소설도 싱겁게 느껴져 서울 종로 우미관을 비롯 단성사, 미도, 피카디리, 대한극장 등을 전전하며 서울 시내 모든 극장을 섭렵하기 시작, 내가 보지 않은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그때 그 시절 보았던 만화와 소설, 영화들이 오늘날 나로 하여금 시와 수필, 칼럼을 쓰게 하고 인문학 강사 노릇을 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결국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없다. 뭔가 깊이 빠져들게 하는 일은 그만한 인연이 있어서 일 것이다. 합기도 관장을 하다 어쩌다 입산출가의 길을 선택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나는 지난 나의 과거사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를 하지는 않았다. 그 까닭은 불가(佛家)에서 흔히 말하는 우주의 연기설(緣起說)과 인연법을 믿기 때문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가 순환하고 인간의 생로병사가 돌고 도는 윤회의 법칙은 만고의 진리이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의 윤회를 벗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또 한 번 나를 돌아본다. 나를 이만큼 키워준 세상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21세기에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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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화 2021-04-05 16:12:52
좋은글 잘읽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