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의 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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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농익은 봄볕이 쏟아지는 날이면 나는 뜰을 서성이며 생기를 맞는다. 이내 몸과 마음이 따스해진다. 햇볕의 마력은 복잡한 미로를 벗어나 자연적인 단순한 삶을 동경하게 하는가 보다.

조그만 묵정밭을 정리하여 한둘씩 심어놓은 꽃나무들이 십여 년 세월 동안 꾸준히 품격을 키우고 있다. 저마다 희망을 파종하듯 새잎을 내밀고 몽우리를 매달고 앞선 자는 꽃을 피운다.

박태기나무는 가지마다 자홍색 불을 지피고, 사철 장미도 빨간 정열을 뿜기 시작한다. 목단은 연분홍 치마를 겹겹이 두르고 풍채를 자랑하는가 하면, 프리지어와 새우난도 노랑 물감으로 꽃등을 달아 놓았다. 이들에 비해 크기나 모양이 초라하고 희끄무레한 보리장나무꽃도 기죽지 않고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생을 받드는 꽃의 순수한 마음을 읽는다. 가파른 산 정상에 이르러 환호하듯, 꽃 울음이 긴 건 삶을 절절히 불태우기 때문일 테다.

피면 지는 것이 순리 아니던가. 허공을 환하게 밝혔던 매화 앵두꽃 수사해당화가 꽃비로 지고 나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먼저 왔으니 아쉬움 없이 먼저 떠났을까. 늙음에 다가가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내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진 않았을까. 아니면 살기 위해 태어난 거라며 열심히 나아가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을까.

단풍나무는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꽃이 핀 줄도 모른다. 공작단풍이 가지를 늘어뜨리며 아름다운 갈색 잎을 매달고 눈길을 당긴다. 홍단풍은 울긋불긋 가을을 매달아 뜰의 왕자답다. 햇볕의 영향일까, 빨간 순은 자라며 적갈색 연노랑 연초록과 뒤섞이며 공중에 명화를 걸어놓는다. 풍경은 더불어 빛을 발하는 합작품이지 싶다.

어느 꽃에서건 숨죽여 귀를 기울이면 겨울의 긴 여울을 건너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생은 시린 발을 옮기며 미지의 시간으로 사라지는 운명이려니, 당연한 걸 슬퍼하진 말아야겠다. 포용은 노년에게 주어지는 선물, 기왕이면 모든 일을 긍정으로 안아볼 테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손자와의 통화 한 토막이 귓속에 눌러앉았다. “지호야, 학교에 갈 준비 잘하고 있니?” “예, 할아버지.” “무얼 준비하는데?” “마음이요.” 순간 나는 구석기 시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문구류나 책가방 따위를 떠올렸는데 마음의 준비를 한다니. 그 마음속에 세상을 살아갈 희망과 사랑의 씨앗이 넉넉히 들어 있길 빌어 본다.

내게도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경구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머릿속에 간직된 죽은 것들이다. 가슴에서 들끓고 발바닥으로 내려가 실천에 옮기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요즘 무너지는 건강 앞에서 출발해버린 버스를 바라보듯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 하는 말을 소환하곤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로 위안하며, 저녁이면 운동으로 아내와 사오십 분 거리를 걷는다. 날씨가 좋은 낮에는 혼자 한 시간쯤 걷기도 한다. 마음이 가난해질 때면 카네기의 명언을 떠올린다. ‘나는 신발이 없다고 울적했네,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어떻게든 비교 우위에 서려고 삶을 닦달하고 지쳐 쓰러지는 불행의 연출자는 되지 말 일이다.

내 생의 결과물은 그냥 살았다는 것, 햇볕 속에서 잠시나마 호사했다는 기억을 간직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겠다. 내 눈 속에 들인 세상 풍경, 낙관 없이도 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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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ee 2021-04-06 01:08:24
삶의 위로가 되는 주옥같은 글이네요.
자신의 생을 받드는 꽃의 순수한 마음을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