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속의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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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1년이 걸린다. 천문학적 묘리가 숨어있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 돈다는 것. 그게 중위도에 자리한 우리나라 기후에 기막힌 선물을 내렸다. 사계절이다. 봄에 싹트고 꽃이 피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 여름엔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 세상이 진한 초록색이 되고 동물들은 신나고 매미가 울고 비가 많이 온다. 가을에 벼가 익는다. 풀잎이 누렇게 변하고 단풍이 물들고 과일이 익는다. 겨울엔 서리 내리고 눈이 오고 동물들이 땅속에 들어 겨울잠을 잔다.

무한히 반복될 도식 같은 이 순환은 혼돈 속의 엄연한 질서다. 여름과 겨울뿐인 열대와 한대는 최악의 환경으로 너무 단조하다. 일 년 내내 이글거리는 불덩이 아래 살아야 하고, 풀도 나지 않는 얼음 속에 사는 건 고통이다.

싹 터 설레는 매혹과 기대의 봄, 사랑으로 가슴앓이하듯 활활 타오르는 여름,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떠올리는 결실과 수확의 가을, 추위 속에 사물이 쇠락하고 움츠러드는 죽음의 겨울. 사계절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아름다운 띠를 두르고 우리 앞으로 오는 신비로운 스펙트럼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신생·성장·사멸하는 장대한 서서이고 퍼포먼스다.

언덕에 올라 계절의 흐름 속 인생을 내다본다. 내가 나를 봐도 절로 가슴 뛰던 그 날것의 한때, 청년 시절이 있었다. 팔딱거리는 근육과 단단한 뼈대로 생을 짐 져 내달리던, 풋풋하고 싱그럽던 20대는 봄이었다.

철이 들어 조금 점잔 피워가며 궤변으로 철학을 논하던 장년 시절이 있었다. 아직 혈기 식지 않았지만 성찰하고 자제하며 이성의 눈으로 앞과 뒤를 재고 따지던 30대는 여름이었다.

하는 일의 끝이 보이고 이따금 일이 끝난 뒤가 쓸쓸할 것 같은 스산한 느낌에 초조하던 중년 시절이 있었다. 수확해 다발로 져 돌아오다 텅 빈들을 뒤돌아보던 4,50대는 가을이었다.

일에서 떠나와 할 일을 잃어 망연자실, 눈이 이르는 데마다 허허롭고 을씨년스러운 노년을 맞았다. 뭘 뺏긴 것 같고 놓친 것만 같아 주춤대는 참 외로운 이 7,80대는 인생의 겨울이다.

인생 속의 사계절. 한 생을 그것에 대입하고 보니 이가 맞아 합치된다. 푸나무가 성장할 때의 왕성한 기세가 무서리에 시들어 버리듯 인생 또한 나이 들면 어느 날 갑자기 쪽을 못 쓰게 된다. 산이라도 들고 세상을 덮을 것 같던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의 기백은 어디에 팔아먹었나. 뼈마디 어디 하나 성한 데 없고 멀쩡하게 보고 듣고 만지며 오감을 받아들이더니 여기저기 온전한 데가 한 군데도 없다. 식탁엔 느느니 약봉지, 뒤뚱거리면서라도 어찌어찌 길은 가야 하니 먹어야지 이걸 안 먹으면 되는 일이 하나 없다. 에커니 가오리의 말이 떠오른다.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좋은 시간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 목마르다.

이 나이에 사계절 중 하나를 빌려온다면, 단연 여름이다. 만물은 여름이라는 계절에 자란다. 푸르게 굵게 튼실하게 옹골차게 자란다. 연둣빛이 짙어 심록(深綠)을 띠니, 얼마나 건장한가. 여름의 격렬한 노역이 줄기처럼 굵은 가지를 만든다. 꽃의 낙화를 슬퍼 말아야 하리. 열매를 준비하는 고난의 한고비인 것을.

나이 들어 그 장년. 내 인생의 여름을 오늘에 불러들이고 싶다. 질 때 지더라도 여름의 낙화처럼 열매를 위해 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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