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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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그날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실내는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 시간이 꽤나 흘렀다. 웬일일까. 못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속 태운다.

서울의 명동이나 다름이 없었던 제주시 칠성통에 다방이 선을 보였다. 1976년 제주연감에서 살펴보면, 194710월에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칠성다방이 자리를 잡았다고 기록되고 있다. 남궁, 동백, , 소라 등. 1980년대 말 그 수가 5백여 군데로 불어나, 웬만한 마을에는 두서너 군데 다방이 없는 곳이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만남의 장소에는 정치하는 사람, 글을 쓰는 문학인, 사업을 하는 사람,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만나는 곳이 약속의 장소며, 응접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연령층이나 취향에 따라 다방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인기를 끌었던 마담은 단골손님을 많이 두고 있어서 언제나 수다가 끊이질 않았고, 웃음소리도 멈추는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요즘 커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그 이름조차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하더라고 인기를 끌었던 차는 쌍화차와 블랙커피다. 영업이 잘 된다고 입소문을 잘 퍼뜨리면, 그 다방으로 몰려드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처음 다방을 찾는 사람들이 웃음을 자아내는 일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들어보지 않았던 블랙커피를 남 따라 시켜놓고는 한 참 기다리다가 왜 설탕은 안주느냐고 소란을 피우는 풍경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혼령기를 앞둔 청춘남녀가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날, 그 다방에 들어설 때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지. 약속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그대. 결국 테이블 위엔 시켜놓은 한 잔의 커피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아 바람맞은 저녁이었다. 이별의 비는 눈물로 흘러내리고, 그날 이후로 그 다방엔 간 일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쓰디 쓴커피를 왜 돈 주고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도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 다방들, 나이가 드신 분들에겐 추억의 한 자리로 자리 잡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 자리엔 낭만이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슬픔과 이별의 사연도 많았으리라. 만남과 이별 속에 구슬픈 대중가요 황성옛터노래 소리도 흐르고 있었으니. 정든 고향이 언제나 보고 싶듯, 정들었던 그 다방. 정 주고 떠난 마담을 그리워하며 내리는 봄비일까. 촉촉이 가슴을 적시며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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