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절절한 부정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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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리주단기
자식에게 무심했던 다카타
시한부 선고받은 아들 위해
경극 촬영해 주려 중국으로
배우 리쟈밍 사연 듣고 공감
그의 아들 양양 찾아 떠나

2020년 1월부터 실어온 ‘걸어서 세계여행’은 지난주 58회로 막을 내리고, 이번 주부터는 ‘영화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연재됩니다. 세상의 온갖 영화들 중에는 로드무비를 비롯해 여행을 주제로 한 좋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여행이 금기시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영화 속 여행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도 됐으면 합니다. 

소설 ‘삼국지’에서 관우는 마지막까지 서주의 하비성을 지켰다. 결국은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워 조조에게 항복하고 그 휘하에 잠시 머무른다.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베는 관우의 용맹과 그 인품에 반한 조조는 온갖 배려로 관우를 자신의 부하로 묶어두려 하지만 실패한다. 관우는 결국 탈출해 하북에 있는 유비에게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관우는 조조 군사들이 지키는 5개 관문을 통과하며 6명의 장수를 베었다. 이 오관육참(五關六斬)의 이야기가 곧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고사이다. 

유비에게 충의를 지키기 위해 머나먼 거리(千里)를 혼자서(單騎) 달려(走)간 삼국지 관우의 이야기가, 1800년 세월이 흐른 현대에 이르러 세계적 거장에 의해 또 다른 내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중국 장예모 감독의 중국-일본 합작 영화 ‘천리주단기’는 아들에 대한 마지막 사랑을 위해 머나먼 여행길에 오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행을 매개로 한 일종의 로드무비다. 오랜 세월의 단절과 불통으로 인한 가족 구성원들의 상처가 여행이라는 긴 여정을 통해 치유되며 사랑이 복원되는 과정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다카타는 리쟈밍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의 아들 양양을 찾아 떠난다. 머나먼 시골 땅에서 양양을 만난 다카타는 아빠를 찾아가자고 설득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며 도망친다.
다카타는 리쟈밍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의 아들 양양을 찾아 떠난다. 머나먼 시골 땅에서 양양을 만난 다카타는 아빠를 찾아가자고 설득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며 도망친다.

아내와 사별하고 일본의 한적한 어촌마을에 홀로 사는 어부 다카타는, 간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아들이 원하는 바를 풀어주려 중국 윈난성으로 떠난다. 오랜 세월 부친에 대한 원망이 깊었던 아들을 위해 그동안 너무나 무심했던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도리였다.

중국을 다니며 경극을 연구해온 아들은 중국인 배우 리쟈밍과 그의 공연 모습을 비디오로 찍기로 약속한 바 있지만 간암 선고로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리쟈밍 또한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다. 사생아를 낳았다고 자신을 놀린 자에게 칼을 휘둘러 상해죄로 복역 중이었던 것이다. 

다카타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들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전통 경극을 촬영해 주려 한다.
다카타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들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전통 경극을 촬영해 주려 한다.

중국에 도착해 이를 알게 된 다카타는 교도소 측에 간곡히 부탁한다.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경극 공연을 꼭 촬영하고 싶은데, 원하는 경극 배우가 복역 중인 죄수라는 것이다. 중국 전통 문화를 찍고 싶어하는 일본인의 사연을 들은 교도소 고위 관리는 이를 허가하고 임시 무대까지 만들어준다. 그러나 공연은 시작 초반에 중단된다. 당사자인 리쟈밍이 부모 없이 홀로 크는 어린 아들 양양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연기 몰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생아인 아들을 멀리 홀로 두고 감옥에 갇힌 아비의 심정을 이해한 다카타는 아들을 데려와 면회시켜 주겠다고 약속하고 리쟈밍의 고향으로 떠난다. 

비록 성사되진 않지만 죄수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만나게 해주려 노력하는 과정은 오히려 다카타에게 치유와 깨달음을 준다. 초반에 다카타는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중국 땅 시골에서 자신의 한계와 무기력을 절감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이 못 알아듣고 상황 파악을 못하는 환경이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철저한 소외를 느끼는 것이다. 비로소 다카타는 도쿄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도 지난 세월 이런 이방인 느낌으로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 동안 아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았을 단절과 외로움의 고통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도저히 연기가 되지 않는다며 우는 리쟈밍.
고향에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도저히 연기가 되지 않는다며 우는 리쟈밍.

오랜 세월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함몰돼 망각하고 있던 부성애를 비로소 자각하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병상의 아들은 곧 죽게 된다. 인생사가 그러하듯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늘 뒤늦게 찾아온다. 경극 배우 리쟈밍 또한 어린 아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홀했는지, 감옥 속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일본인 아버지 다카타와 중국인 아버지 리쟈밍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의 삶에만 함몰돼 살아왔다는 것,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너무나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두 부자(夫子)의 안타까운 사연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뒷전에 밀어둬서는 안 되며 그때그때 표현해 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우치게 된다. 

영화는 주로 중국 윈난성의 유명 관광지 리장(麗江)을 무대로 촬영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윈난과 쓰촨의 차(茶)를 티베트 고원의 말(馬)과 교환해오던 세계 최고(最古)의 교역로 차마고도의 중심 도시다. 윈난성 남단의 시솽반나(西双版纳)에서 시작되는 차마고도 전장공로(浕藏公路)는, 보이차(普洱茶)로 유명한 푸얼시(普洱市)를 지나고 이곳 리장에 이르러 절정을 맞는다. 계속된 개발 바람으로 문명화가 많이 됐지만, 도시 주변의 자연은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과 그 위로 떠 있는 맑은 하늘, 초원과 호수 그리고 그 아래를 뱀처럼 휘감아 도는 도로 등, 리장으로 가는 길과 리장에 이른 후의 영화 속 전경들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영화 오프닝과 엔딩 부분에서 주인공 다카타가 상념 속에 서 있는 일본 어느 해변의 정경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여행의 욕구를 콕콕 자극한다.

한 편의 영화와 함께 아름답고 낯선 이국땅을 여행한다. 스크린 속에서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지만 결국은 그들의 내면도 우리와 똑같음을 새삼 알게 된다.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다시금 뒤돌아 생각해보게 된다.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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