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축복인가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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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불로장생을 꿈꾸는 것은 비단 진시황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은 오늘날 평균수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현실이 됐다. 이제 인간의 수명은 100년 동안의 삶을 대비해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 세기 이전만 해도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40세에 불과했다. 2021년 현재 한국여성의 기대수명은 세계 최초로 90살을 넘어섰고 한국 남성의 수명까지도 세계 1위에 올라섰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100세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가 좋기만 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준비한 사람에게는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무작정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병치레 없이 오래 사는 무병장수(無病長壽)의 노후가 아니라 유병장수(有病長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100세 장수가 반드시 반갑지만은 않다. 장수가 축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개인 건강과 경제력은 물론이고 필연적으로 국가의 의료정책이 수반되는 삶에 있다. 100세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우리의 삶은 재앙과 축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00세 시대에 인문학적 사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적 사유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사유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없는 삶은 살아 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유행하는 생애주기별 연령지표가 0~17세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장수노인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100세 시대를 맞이한다고 해도 분명한 명제는 태어난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인생의 주기를 배움의 단계(10~20대 중반)와 행동의 단계(30~40대 후반), 발견의 단계(50~70대 중반), 수용의 단계(노화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기)4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60세부터는 사회적 지위와 같은 외적 가치에서 벗어나 그동안 쌓아온 나만의 내적 자산을 토대로 후반부 인생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삶의 본질과 인생의 가치를 찾아나서는 시기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스티븐 필립스의 말처럼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처럼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나이가 들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삶을 관조하는 통찰력은 더욱 깊어지며, 농익어가는 삶은 행복한 100세 시대 살아가는 축복의 삶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자주 사라봉에 올라 사봉 낙조를 바라본다. 사봉 낙조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나의 말년도 저 낙조처럼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가 질 때 노을이 아름답듯,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혜안과 따뜻한 마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베풂은 나이 듦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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