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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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순 수필가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신록의 계절이다. 꽃피는 새봄이 다시 찾아왔지만 여느 때처럼 상춘을 충동질하는 계절이 아니다. 어김없는 사계의 순환에 봄은 무르익지만, 코로나19로 봄의 향기를 잃어버린 망각의 계절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을 향한 자연의 저주로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은 재앙이다. 오늘은 환자가 얼마나 더 발생하고 몇 명이 더 죽어갈까. 감염자와 사망자의 관리상황 발표를 기다리는 일이 이제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근처 도시공원에서 운동하고 가끔 올레길에 나서는 시간을 빼면 거의 집에 머문다. 책 읽고 문방사우를 벗 삼아 보지만, 어쩐지 집중이 안 된다. 일상 리듬이 깨져버린 나날이 무미건조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 홀로의 자유는 민중 속의 고독이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코로나가 길을 막아 여행의 꿈은 희망에 그치고 만다. 하루빨리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은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닐 터.

열악한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과 의료진, 집합 금지로 손님이 줄어 생계가 위협받는 자영업자들. 이들을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이 제약받는다는 불평은 사치일 수도 있다. 내가 감내해야 할 제약은 인내의 한계점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부에서는 코로나 퇴치를 위해 방역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하고 있다. 여러 규제가 뒤따르고 개인의 자유가 제약된다. 그런데도 이는 국민의 생명과 공공복리를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이다. 일상의 자유가 침해되지만, 죽느냐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방해받지 않는 내일의 일상을 위해서 오늘의 불편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공공질서를 위한 명령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는 노예의 복종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큰 저항 없이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에 감염되는 환자와 사망자는 줄지 않고 있다. 감염원이 불분명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거부 등 방역수칙에 따르지 않고 행정명령에 저항하고 있다. 그 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감염환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는 통계가 결과를 말해 준다. 그들이 원하는 자유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단 말인가. 육신을 보전하며 자유를 누리는 것이 순리다. 적어도 의료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선진국인지 혼란스럽다.

우리나라에도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 개신교 계열 종교집단은 예배, 선교, 교육 등의 집단활동을 강행하였다. 특히 이단으로 낙인된 신천지의 장막성전, 승리 제단 등은 허황한 교리와 선교를 내세워 방역 활동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범법적 집단활동은 슈퍼전파자 역할을 톡톡히 하며 지역사회에 대유행을 불러왔다.

백신을 접종하고 있으나 집단면역이 언제 확보될지, 집단면역이 되어도 코로나 전 일상이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며 진화하는 전염병은 이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서는 모두가 방역 당국의 시대적 명령에 잘 따르는 길 외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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