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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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파산(bankruptcy)이란 말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상인들이 의자를 부숴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음을 알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의자 속에 숨겨놓은 돈까지 털어내는 채권자들의 권리 행사가 당시에도 인정사정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법정 용어로는 채무자가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을 경우 채무자의 총재산을 모든 채권자에게 채권비율대로 변제하는 절차를 말한다. 요샛말로 초대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빚잔치다.

부도나 파산 지경에 이를 때 모자라는 재산이나마 채권자에게 넘기고 빚을 청산하는 일이 쉬운 일인가. 현물까지 동원해 지고 있는 빚을 떨어내는 빚떨이.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 파산제도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채무자에게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한다.

회생법원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빚을 갚을 수 없게 된 이들이 빚 탕감을 호소하러 오는 곳이다. ‘경제의 중환자실이라 불린다. 정기적인 소득이 있으면 개인회생을, 그마저도 없으면 파산 절차를 밟는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올 1분기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건수는 2622건에 이른다. 작년 대비 10%,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9%나 늘었다. 최근들어 매월 1000건을 넘는 추세다.

주목할 건 아직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자영업자 중엔 버는 돈보다 빚을 더 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잠재적 파산자가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 분석 결과 지난해 4분기 자영업자의 대출은 전년보다 17% 늘어난 반면 매출은 5% 줄었다. 장사를 하면 할수록 빚만 불어나는 형국이다.

빚이 없으면 위험도 없다는 서양 격언은 병 없고 빚 없으면 산다는 우리 속담과 닮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건강하고 빚만 없으면 살길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파산 제도는 국가가 개개인의 파산을 구제해주기 위한 취지다. 신용불량자들을 파멸로 내모는 게 아니라 정상생활로 복귀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실패를 용납해야만 자본주의가 굴러간다는 철학이 밑바탕에 깔렸다.

여전히 빚 탕감에 대한 도덕적 논란이 존치하지만 빚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을 제도권이 보호해야 한다. 선량하지만 운이 없었던 채무자라면 빚 때문에 한 인간, 나아가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사회의 정의와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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