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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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4월의 끝자락이다. 매화가 지면 목련이 피고, 벚꽃이 피었는가 하면 어느새 꽃눈으로 흩어져버린다.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는 봄의 향연에 관객이 된 우리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맘때쯤이면 어둑새벽부터 이 집 저 집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가시나무에도 저항할 수 있는 점퍼와, 안전한 신발을 신고 고사리를 꺾기 위해 산으로 들로 나서는 것이다.

비 온 다음날이면 안개 속을 달리는 자동차 윈도브러시의 움직임이 마음처럼 바쁘다. 빨리 가서 조금이라도 더 꺾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는 이도 있고, 대충 짐작으로 가는 이들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이웃을 만나는 일은 종종 있다. 고사리 군락지는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나만의 비밀장소를 정해 몰래 다닌다 해도 흉이 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마음이니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나면 전사처럼 숲을 누비기 시작한다. 허리는 반 쯤 구부리고 앞치마 주머니를 활짝 열어 놓는다. 내딛는 발걸음이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포착물을 검색하는 눈빛은 예리하다.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주시하듯 빈틈이 없다. 가시덤불 사이로 곱게 올라온 고사리가 보이면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꺾는다. 그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다. 동남아시아 어느 한 지역의 어부가 조개 속의 진주를 꺼내 보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진짜 보석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헤치고 힘차게 솟아오른 고사리의 손을 잡는 일만큼 행복했을까.

5, 6세기 경에 쓰인 『제민요술』에 보면 제철에 고사리를 말려 두었다가 가을과 겨울에 먹기도 하고 임금이나 관료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황상(黃裳)의 「고사리 캐기」라는 시에는 ‘하늘(黃天)은 백성들이 굶지 않게 하느라 산에 고사리를 나게 하니, 뿌리를 다투어 캐는 바람에 산이 무너질 지경이라’고까지 했다. 뿌리는 갈아 먹고 줄기는 삶아 먹으며 기근이 들어도 굶어 죽지 않았으니 구황식물로서 고사리만 한 효자가 또 어디 있으랴.

고사리를 꺾는 이들의 마음 또한 보석처럼 아름답다. 가장 먼저 채취한 것은 조상을 위해 0순위로 갈무리하고, 다음으로 형제자매 또는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잡귀를 퇴치하겠다며 통마늘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어느 할머니의 샤머니즘적 믿음 또한 조상을 경모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고사리가 손을 펴지 않았을 때 꺾어야 부드럽고 맛이 좋다 한다. 기일이 다가오는 며칠 전부터 심신을 정갈히 하듯, 고사리를 꺾는 일은 일 년을 준비하는 하나의 의식인지도 모른다.

아파트 마당에 삶은 고사리가 다소곳이 누워있다. 넓은 돗자리 위에 가득 널려있는 걸 보니 누군가가 자신의 비밀장소에라도 다녀온 모양이다. 말리는 일은 할아버지의 담당인지 한 가닥씩 들어 올리는 손놀림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쪼그리고 앉은 둥그런 등이 마치 고사리 같아 보여 어원을 살펴보니 ‘고비사리’ ‘곱사리’ ‘곡사리’ ‘고사리’의 순으로 변형됐다고 한다. ‘구부러진 둥근 뭉치 모양의 풀’을 해석한 것이다.

밤이슬을 맞으며 경쟁하듯 꺾어 오든, 비밀장소에 가서 몰래 꺾어 오든 마음은 결국 조상님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회향하겠다는 선의가 담겼음에랴. 고사리 철만 되면 고사리 손만큼씩 점점 마음이 넓어지는 사람들. 기근에 배고픔을 면케 했다면, 비대면 시대에는 마음을 치유하고 정을 나누는 고사리로 손색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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