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련님’을 다시 읽다: 정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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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도련님’(1906)은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지금도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이다. ‘도련님’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고 있는 사(私)소설인 만큼, 작품 속에는 작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신기한 것은 100여 년 전 작가가 느꼈던 문제의식과 불안감이, 시공을 뛰어 넘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심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도련님’은 물리 학교를 갓 졸업한 도쿄 출신의 무모하지만 정의로운 주인공 ‘도련님’이 어느 지방 도시의 중학교 수학 교사로 발령받고, 불의와 싸우는 청춘모험소설이다. 도련님은 거리낌 없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기질 때문에 학생들과도 충돌하고, 동료들과도 대립한다. 장난 심한 학생들, 속되고 부도덕하고 약삭빠른 교사들과의 충돌이 도련님의 솔직담백한 시선으로 경쾌하고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도련님은 어떤 상황에서든 정의를 관철하고 비록 지더라도 정의를 굽히는 것보다 낫다는 일념으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편에 서서 악한 세력과 싸운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주인공 도련님은 보편적인 시선을 뒤흔들 듯 자신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의 확실한 선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그는 잘못을 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일관하는 학생들과 권력을 이용해 부정을 저지르는 교사들을 향해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맞선다. 최대한 사실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작품 속 도련님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나 역시 중학교 때 장난이라면 꽤 쳐본 사람이다. 그러나 ‘누가 이랬어?’ 했을 때 내가 안 했다고 잡아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건 한 것이고 안 한 건 안 한 것이다. 나란 놈은 장난을 쳤어도 거리낄 게 없다. 거짓말을 해서 벌을 피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장난을 하지 말 일이다. 장난과 벌은 붙어 다니는 것이다. 벌이 있으니까 장난칠 마음도 생기는 거지. 장난은 실컷 쳐놓고 벌은 안 받으려고 피하다니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가. 돈은 빌리면서 갚아야 될 땐 오리발 내미는 비열한 짓들은 모두 이런 녀석들이 어릴 적 버릇 못 버리고 자라서 하는 짓거리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죄가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놈이라면 자고 일어나 반성하고 아침에라도 용서를 빌러 오는 것이 정상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쁜 짓 하기를 장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 “대책이 안 선다고 질 수는 없다. 내가 솔직하기 때문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에선 정의가 반드시 승리를 거두게 되어 있다. 오늘밤 안으로 못 이기면 내일 이긴다. 내일도 이기지 못하면 모레 이긴다.”

살면서 누구든 한번쯤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다 대고 외쳐봤을 듯한 말들이다. 이와 같은 주인공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도덕과 정의라는 키워드를 찾아 낼 수 있다. 나아가 불의에 맞서고, 흐릿하고 모호한 도덕의 경계를 일갈하는 도련님을 통해 통쾌함을 넘어서 카타르시스마저 느낀다. 도련님의 날선 직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똑같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며, 성찰의 기회를 준다. 나는 정의로운가? 너는 정의로운가? 우리사회는 정의로운가?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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