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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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사흘 전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19 예방접종으로 건강을 위한 여지없는 선택이다.

처음엔 백신이 개발됐다고 펄떡 뛰더니, 이런저런 설왕설래로 헷갈리기도 했다. 좋다 궂다 기저질환이 있으면 까딱하다 사망에 이르게 된다. 세계 각국이 물량 확보에 혈안이 돼 있어 한국은 한참 경쟁에 밀리고 있다. 차질이야 있었겠지만 아무려면 정부가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허술히 하면서 잘되고 있다 허언할까.

솔직히 나는 항간에 나도는 말들을 뜬소문쯤으로 여겨 왔다. 정의다 공정이다 평등이다 하는 이슈하고 다르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이 역병을 퇴치하는 일에 어물쩍거릴 정부가 어디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그건 이 나라의 정부가 아니다. 얼마나 밝은 세상인가. 믿을 건 믿는 게 국민의 도리다.

며칠 전, 연동주민센터에서 백신 접종 의사를 물어왔다. 75세 이상 고령자 대상으로 실시되는 첫 접종이다. 맞겠다고 명단에 올렸다. 접종 날이 임박하자 이틀 전에 대림 1차 아파트 정문에 버스가 나갈 것이고, 한라체육관까지 태워다 준다는 문자가 왔다.

내외가 아파트 정문으로 나갔더니, 이미 주민센터에서 젊은 직원이 현장에 나와 접종예상자 명단을 호명하며 체크하고 있다. 하루에 몇 번으로 나눠 수송하는지 20여 명에 불과하다. 출발하면서 임지에 도착한 후 밟을 절차를 자세히 설명한다. 노인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행정의 배려에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접종 장소인 한라체육관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거리를 두고 많은 노인들이 앉아 있는데 다들 무거운 표정이다. 웃는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도내 70대와 90대 노인이 접종 후 잘못됐다는 보도가 나온 탓일까. 아직 인과성이 밝혀진 것도 아니다. 나이 들어도 더 삶을 누리려고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두려움인들 왜 없을까.

현장엔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행정요원들도 노인들이 예진표를 꼼꼼히 작성하게 거든다. 곧바로 접종 부스로 안내됐다. 우왕좌왕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행정과 의료의 협조체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돼 비교적 일사불란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부축해 자리에 앉히고 있다. 걸음을 조촘조촘 내디뎌 안쓰러운 어느 할머니를 젊은 여인이 부여안아 다가오는 장면엔 숙연했다. 휠체어도 여럿 들어왔다. 다들 뒤에서 밀어주는 손이 있었다.

접종은 눈 깜빡할 새에 이뤄졌다. 내게 주사한 여의사는 “오늘은 샤워하지 않는 게 좋아요.” 하며 웃었다. 웃음에 긴장이 싹 풀렸다. 20여 분 이상 반응을 관찰했으나 문제가 없다. 바로 그때, “여기 앉으신 어르신들, 연동 대림 1차에서 오신 것 맞지요? 왼쪽 출입구로 나가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실 때는 소형버스이고 푸른색이었는데, 이번엔 대형이고 흰색입니다.” 오면서 돌아갈 교통편을 걱정했는데, 끝까지 행정이 해결해 준다. 이렇게 섬세하다니, 밀착 행정이다. 주민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있잖은가.

“기사님,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젊은 기사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했다. 발걸음이 가볍다. 2차 접종은 5월 18일이라 문자가 왔다. 몸만 가면 된다.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신뢰다.

세상 좋아졌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피부에 와 닿는다. 한데 이 나이에 이런 양질의 서비스는 처음이라 좀 멍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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