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 그 사잇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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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화사하던 꽃자리마다 초록색 이파리들은 그 자리를 위풍스러움으로 단장하느라 사뭇 분주하다. 몸피 키운 이파리들은 나날이 싱그럽다. 눈 닿은 곳, 초록은 깊이를 재촉하며 더없이 활기차다.

지척이 천 리라 했던가. 몇 번을 벼르다 둔 올레 투어 코스를 맘 잡고 걸어보기로 했다. 걸으며 마주한 자연은 계절 앞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한껏 뽐내고 있다. 종종 만나는 올레꾼들도 역방향으로 걸어 곧 엇갈릴 걸음이지만 가볍게 나누는 인사에 낯익은 듯 정겨움이 묻어난다. 좋다, 참 좋다. 이렇게 나서면 될 일이었다.

해안도로를 낀 올레길은 이곳서 나고 자라 익숙한 풍광들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바다의 물빛도, 파도도 내리쬐는 햇빛에 윤슬도 어제 본 바다와 오늘 대하는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거기서 느끼는 감정인들 어디 하나일까. 어디를 봐도 살아 숨 쉬는 날것의 힘, 그 생동감이 좋다.

지난달이었나보다. 제주 올레가 세계 10대 해안 트레일(걷기 여행) 코스에 선정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영국 아웃도어 전문 매거진 액티브 트래블러가 선정한 세계 10대 해안 걷기 여행 코스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올레가 이름을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반갑고 뿌듯했다. 그 전문지에선 제주는 한국에서 보물섬으로 불리며 왕관의 보석같은 존재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화산섬이라는 특별함이 갖는 검은 현무암과 해안선이 건네는 색감도 그지없이 좋다. 해안선 따라 걷는 올레 코스는 잔잔히 이는 바람에 파도는 오가느라 출렁이며 바위에 부서져 내지르는 소리가 귓전에 곱게 닿는다.

들판과 농경지를 에돌며 소롯길에 접어들자 배고픈 다리라는 곳에 이르렀다. 배고플 때 반듯이 누우면 배가 푹 꺼진 것 같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이곳. 한라산에서부터 흘러 바다로 이어지는 천미천의 꼬리 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간세의 몸통에 친절한 설명도 있었다. 발을 조금만 휘적거리면 물이 발등으로 곧 기어오를 듯 찰랑인다.

이어 넓게 펼쳐진 백사장, 보기만 해도 속이 탁 트인다. 아이처럼 걸었다. 때 이른 백사장엔 모자로 얼굴을 덮고 벌렁 누워 있는 사람, 모래판이 떠날 듯 신나게 뛰는 아이들, 반려견과 경주라도 하듯 냅다 뛰는 이,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끼리끼리 어깨를 맞대고 모래 위를 걷는 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각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 내 발 사이로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모두 잽싸다. 모래판에서 숱하게 놀던 달랑게들이 울림을 감지하여 손톱만 한 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느라 바쁜 게다. 주변엔 동글동글하게 경단처럼 모래 흔적이 잔뜩 있다. 그들이 집 짓느라 파낸 것이다. 그마저도 귀엽다.

고개 들어 한라산을 바라보면 삼백예순 여남은 개의 오름 중 몇몇 오름 풍광이 안겨와 바라만 봐도 설렌다. 이런 설렘에 보태어 들꽃 가득한 5월의 들판을 걷는 올레길은 느림의 미학과 걸음마다 건강을 담뿍 챙길 것 같은 생각 때문일까. 이미 많은 이들이 아끼며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삶에 지친 심신을 안고 찾아 나선 올레길, 외부의 강한 조임에서 풀려난 것 같은 자유로움이 걸음마다 배었다. 내일 걸어갈 길에서의 새로움이 또 다른 벅참으로 다가올 기대로 마음은 사뭇 분주하다. 천혜의 이런 절경을 아끼고 지켜 모두가 힐링 할 수 있게 오래 보전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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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또 2021-05-04 16:35:14
잘 읽고 가요~!

세시리아 2021-05-04 14:21:02
표현해주시는 글이 넘 공감하는글입니다
다음글 도 부탁해요

김 대니얼 2021-05-04 07:22:06
제주의 풍광을 이렇게 진솔 담백하게 그릴 수가 있군요. 격하게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