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어린이들이 산방굴사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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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논설위원

192651일 아침, 모슬포 어린이들이 산방산 중턱에 있는 산방굴사(山房窟寺)에 모였다. 어린이날을 자체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바로 전날에야 제주경찰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제주소년연맹이 준비하고 있던 어린이날 행사를 전면 금지시켰다. 이러한 집회 금지조치에 크게 반발한 모슬포 어린이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산방굴사에 모여 비밀히 어린이날 기념 집회를 개최하려 했다.

지난 5일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정 각 소년단체에서는 준비에 분망 중 그 전날인 4일에 돌연 당지 경찰은 이날에 대한 집회를 일체 금지하는 통지를 발하는 동시에 엄중히 경계하든 바 이날을 당하여 대정읍내에서 미리 정하였던 집회 장소인 산방굴사를 향하여 출발하려던 소년·소녀가 집합한 것을 해산시킴에 따라 각지에서 제지하여 출발하지 못하게 하였든 바, 읍내소년단은 제2차 비밀히 모여 산방굴까지 갔으나 다른 단체의 소식을 몰라 궁금히 있던 중 갑자기 경관 수 명이 달려들어 해산을 시키는 동시에 두 명을 검거하여 모슬포경찰관주재소로 인치 취조 중이다(동아일보, 1926.05.14.).”

192351,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날 기념식과 관련 행사가 열렸다. 이날 어린이날 선언문이 발표됐다. 1922316일 일본 동경에서 방정환(方定煥) 선생이 어린이 고유문화와 예술 활동을 진작시키며, 어린이 인권 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색동회를 조직하였는데, 바로 어린이날 선언의 직접적 배경이다. 이에서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용하고,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연소(年少)노동을 금지하며, 어린이가 배우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정과 사회시설 보장할 것 등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어린이날 행사는 무산 아동의 해방론같은 계급적, 항일적 성격의 운동으로 잘못 인식되어 관련 행사가 다 금지됐다. 게다가 51일은 메이데이’, 즉 노동자의 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본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받게 되었다. 1926년 제주경찰서도 제주지역 어린이날 행사를 전면 금지시켰다.

이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모슬포 어린이들은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어린이에 관한 표어를 작성하여 인쇄하고 배포하려 했다. 그러나 사전에 이를 알아차린 모슬포 경찰관의 집회 방해와 해산명령이 자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4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슬포 어린이 4, 50명은 주재소 앞에 모여 경찰에게 검거이유를 따져 물으며 석방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절대 석방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화가 난 모슬포어린이들은 어린이노래를 부르며 읍내를 시위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5명이 검거되었고 시위가 지속됨에 따라 30여 명이 더 검거되었다. 점차 어린이뿐 아니라 읍내 수백 명 군중이 모여들어 우리 동무들을 놓아주든지 못 놓아줄 거면 우리까지 잡아 가두라며 시위를 계속했다. 이날 모슬포경찰관주재소에 검거되어 취조받은 어린이들 중 3명은 20일 구류 처분받았다.

1931년 일제는 어린이날을 유아애호(幼兒愛好) 주간으로 변경하고 어린이의 권리 대신 육체적 건강을 강조했다. 광복 후, 55일을 다시 어린이날로 정했으며 1957년 어린이헌장이 공식 선포되었다. 95년 전 이런 각고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어린이와 노동자가 더불어 존중받는 5월을 꽃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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