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첫 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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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기관이나 기업의 리더로 막 부임한 이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초기에 어떻게 조직을 효과적으로 장악하느냐일 것이다. 그 성패에 따라 리더의 입지가 크게 달라진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왓킨스 교수는 ‘90일 안에 장악하라(First 90 Days)’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자리에서 리더의 성패는 부임 초기 90일 이내에 조직과 업무를 효과적으로 장악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서 신임 리더는 다음 세 가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새로운 자리와 역할에 대해 빨리 배울 것, 자신을 리더로 승진시킬 것, 누가 조직의 힘을 가졌는지 파악하고 그들과 관계를 만들어갈 것 등이다.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가 지난달 말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 부패 척결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세평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특혜 조사논란과 검사·수사관 정원미달 등으로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다.

이를 반영하듯 김진욱 공수처장은 직원들에게 출범 100일을 맞아 단체 메일을 보냈다. 그는 시행착오도 있었고 다른 조직보다 배는 힘들었다공수처가 왜 탄생했는지 그 사명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조금 힘들어도 괴로워도 넉넉히 이기리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김 처장이 힘들었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자초한 측면이 크다. 본인의 처신에 따라 공수처가 어떤 위상을 가질지가 결정되는 데 그 무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왓킨스 교수가 제시한 세 가지 기준에 대입했을 때 김 처장은 첫 번째로 여러 논란 끝에 조직이 탄생한 만큼 비리 척결의 수장다운 포청천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했다. 둘째는 정신적으로 변호사에서 공수처장으로 셀프 승진을 시켰는지 의문이다. ‘검찰 황태자를 상대할 때 결기와 강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 번째는 자신이 상대할 청와대, 국회, 검찰 등과의 관계 정립이다. 주눅이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운은 짱짱해 보이지 않았다.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닭을 잡는 데 소 잡는 큰 칼을 쓸 필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칼에도 제 용도가 있다. 소 잡는 칼을 쥐고도 소가 달려들까 무서워 뒷걸음을 해서야 되겠는가. 리더의 첫 90일은 공수표로 압축된다. 존재 이유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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