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파리·그리스로 이어지는 18년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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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포 3부작
청년 제시와 셀린의 첫 만남 ‘비포 선라이즈’…서로 사랑 느껴
30대 중반이 된 두 주인공, ‘비포 선셋’서 작가와 독자로 재회
마지막 ‘비포 미드나잇’서 중년 부부 이야기 현실적으로 풀어
3부작으로 구성된 영화로 1편 ‘비포 선라이즈’는 여행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20대 청춘, 2편 ‘비포 선셋’에서는 재회한 30대 유부남과 독신녀, 3편 ‘비포 미드나잇’은 9년 세월이 흘러 40대가 된 부부의 이야기를 각각 풀어낸다.
3부작으로 구성된 영화로 1편 ‘비포 선라이즈’는 여행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20대 청춘, 2편 ‘비포 선셋’에서는 재회한 30대 유부남과 독신녀, 3편 ‘비포 미드나잇’은 9년 세월이 흘러 40대가 된 부부의 이야기를 각각 풀어낸다.

대부, 반지의 제왕, 인디애나 존스, 다크나이트, 스타워즈, 매트릭스, 매드맥스…….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영화의 제목들이다. 모두가 블록버스터 대작들이란 점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트릴로지(trilogy)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1편이나 2편으로 끝나지 않고 3부작까지 이어진 시리즈물을 말한다. 이런 공상과학 액션 대작들에만 트릴로지가 있는 건 아니다. 1995년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로 시작되어 ‘비포 선셋(Before Sunset)’과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으로 이어진 ‘비포(Before) 3부작’은 앞서 열거한 대작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저예산 영화지만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트릴로지로 꼽힌다.  

여행에서 만난 20대 청춘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껴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시리즈 1편의 골격이다. 9년 후 개봉된 시리즈 2편에선 30대 유부남과 독신녀 신분으로 재회한 두 남녀의 또 하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9년 세월이 흘러 40대가 된 두 남녀는 3편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나타날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시작해 프랑스 파리를 거쳐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해변에 이르기까지 18년 동안 이어가는 두 남녀 제시와 셀린의 사랑과 인생 여정을 들여다보자. 

▲비포 선라이즈(1995년, 20대 청춘 남녀) 

유레일 열차 속 두 남녀, 각자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청년 제시는 다음날 아침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엔나에 곧 내릴 예정이고, 셀린은 부다페스트에서 할머니를 만나고 파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런 청춘 남녀가 한 좌석에 마주보고 앉았으니 서로 내숭만 떨 리는 없다. 자연스런 대화가 이어지며 둘은 곧 친해진다. 급기야는 “나랑 같이 비엔나에 내렸다가 내일 아침 파리로 떠나면 어쩌냐?”는 남자의 제안에 셀린이 응하며 두 사람의 단 하루 비엔나 여행이 시작된다. 

별다른 사건 전개 없이 단조로운 여정이지만 두 주인공을 따라가는 관객들에겐 100분이란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진다.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작품답게 꽉 짜여진 각본과 연출이 몰입도를 높여주기 떄문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도시 비엔나 아닌가. 역에서 내리자마자 건너는 촐암트슈테그(Zollamtssteg) 녹색다리,  LP 디스크로 ‘Come Here’란 곡을 함께 들었던 올드앤뉴(Alt & Neu) 레코드샵, 도나우 강변을 거닐다 들른 ‘이름없는 자들의 묘지(Friedhof del Namenlosen)’, 각자의 속마음을 우회적으로 털어놓던 카페 슈페를(Café Sperl), 둘이 첫 키스를 나누던 프라터(Prater)공원 대관람차, 나이 든 여인에게 손금을 보게 했던 게른트너 거리의 클라이네스 카페(Kleines Café), 그리고 영화 포스터의 배경지인 알베르티나(Albertina) 미술관 2층 테라스와 기미상 계단……. 

모짜르트와 클림트 등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줬던 유서 깊은 도시를 관객들은 남녀 주인공을 따라가며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단 하루,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이라는 설렘 가득한 홍보 카피와 함께 독자들 나름대로의 추억이나 회한 또는 환상에 빠져들게 해주는 작품이다. 

▲비포 선셋 (2004년, 30대 유부남과 독신녀) 

‘6개월 뒤인 12월 16일 저녁 6시, 플랫폼 9번에서 만나자.’ 비엔나에서 헤어질 때 둘이 했던 약속이다. 그러나 만남은 이뤄지지 안았다. 그리고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헤어질 당시 둘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서로 못 보고 흘려 보낼 줄은 몰랐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두 사람이 유명 작가와 독자의 신분으로 재회하면서 두 번째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연 반 기대 반으로 성사된 만남이다. ‘This Time’이란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의 파리 북토크 현장에 셀린이 찾아온 것이다. 반갑게 만났지만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시의 저녁 비행기 탑승에 맞춰 역시 제한돼 있다. 9년 전 약속은 왜 지켜지지 못했는지, 긴 세월 동안 서로에 대한 각자의 마음은 어땠는지, 결혼은 했는지, 일상의 고민은 무엇인지……, 다시 곧 헤어져야 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일순간의 멈춤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 

둘의 재회를 역시 9년 동안 기다려온 관객의 시선 또한 바쁘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Shakespeare & Company)에서 출발하여, 센강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노틀담 대성당, 자르뎅 거리(Rue des Jardins)에서 만나는 생폴 생루이(Saint Paul Saint Louis) 성당, 뒷골목을 누비다 찾아 들어가는 카페 르 퓌르(Le Pure Café), 인상 깊은 고가 산책로 프롬나드 플랑테(La Promenade Plantee) 그리고 셀린의 아파트가 있는 쿠르 드 레뚜왈 도르(Cour de l’Etoile d’Or)까지 영화는 파리의 도심 구석구석을 짧은 시간에 알차게 보여준다. 

관객들은 두 주인공의 금쪽같은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면서, 파리의 뒷골목과 공원과 카페 등 아름다운 도시 여행을 함께 따라하는 것이다. 셀린이 부르는 자작곡 ‘A Waltz for a night’의 깊은 여운과 함께 이들의 만남은 다시 관객들의 애를 태우며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비포 미드나잇 (2013년, 40대 재혼 부부) 

개봉 당시 2편을 본 관객이라면 극장 문 나서면서 아쉽고 허탈했을 것이다. 이 커플 다시 보려면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하는 심정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9년이 지났다. 드디어 3편이 개봉됐다. 18년 전 유럽 횡단 열차에서 파릇파릇했던 두 청춘은 어느덧 40대 중년이 되어 있다. 제시와 셀린 역을 연기한 배우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또한 영화 속 상황과 똑같이 나이를 먹었다.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었고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을까? 

1편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꿈속 마법 같던 만남은 2편 ‘비포 선셋’에선 여전히 가슴은 설레지만 꿈이나 마법과는 거리가 먼 ‘현실’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3편 ‘비포 미드나잇’에선 가슴 설렘조차도 없어졌다. 사춘기 아들딸 셋을 아등바등 키워가는 오로지 ‘찐 현실’부부가 있을 뿐이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두 주인공 모습이지만 그래도 관객들 눈에는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이 충분히 낭만적이다.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름다운 해변 지역을 함께 여행하는 기분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던 20대 때와 다르지 않게 끊임없이 수다를 풀어내며 메토니 캐슬(Methoni Castle) 오솔길과 필로스(Pylos) 마을을 거니는 둘의 모습에는 중년의 여유가 엿보인다. 카르다밀리(Kardamyli) 해변에 앉아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는 둘의 모습에선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1,2편처럼 낭만과 로맨틱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나이 들어버린 두 주인공 모습에 다소 실망하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중년의 부부가 쉼 없이 늘어놓는 수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아옹다옹 싸워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어? 이거 내 이야기잖아?’ 하는 마음으로 고개 끄덕이며 공감했을 것이다. 탄탄한 시나리오에 치밀한 연출과 자연스런 연기가 합쳐진 결과다. 2013 LA 비평가 협회상과 2014 전미 비평가 협회상, 두 군데 영화제에서의 각본상 수상이 작품의 완성도를 말해준다. 

부부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은 화해하는 엔딩 장면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방을 뛰쳐나간 셸린을 찾아가 달래다 지쳐가는 제시의 넋두리는 세상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젠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여전히 동화 속에 살고 싶은 거야. 난 지금 잘하려고 애쓰고 있어. 무조건 당신 사랑한다고 하고 아름답다고 하고. 당신 웃게 해주려고 당신 히스테리 다 받아주는 거야.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이게 맞아. 진짜 삶이니까. 완벽하진 않지만 진짜야. 그게 안 보인다면 당신 눈이 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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